[사설]설은 체온으로 서로를 덥힐 기회

입력 2009-01-24 08:16:37

강추위가 닥쳤다. 대구 시내마저 영하 8℃까지 기온이 추락하리라 예보됐다.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자락의 경북 산간 추위는 더할 터이다. 이번 한파는 그러나 다른 이유 때문에 전에 없이 더 매섭다. 난데없는 경제위기가 우리의 심장까지 얼어붙여 버린 게 그것이다.

이미 직장을 잃은 사람이 숱하다. 월급쟁이에게 그건 사형선고 받는 것과 진배없다. 날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거리가 줄어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하도 성실해 매일같이 일할 수 있던 사람마저 한 달에 반 이상 공친다고 했다.

직장 신입의 문턱조차 넘어보지 못하게 된 20대 젊은이들이 가슴 아프다. 외환위기 사태로 큰 고통을 겪었던 세대가 받는 두 번째 타격이 애처롭다. 날로 늘어가는 길거리 노점상들의 옹크려 주먹만 해져 버린 몸체가 가슴을 저민다. 몸부림치느라 너도나도 시작했던 식당들의 몇 달 못 가 문 닫는 모습이 처참하다.

어떤 이가 차상위 계층 여덟 집을 돌아봤더니 제대로 난방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 했다. 방바닥 보일러를 갖춘 집이 겨우 셋 있었으나 기름통은 비었고 전기선은 빠져 있더라는 거다. 전기장판 좁은 폭에 몸을 구겨 붙여 밤을 지새운다는 말이지만, 마지막 한 사람은 그마저 갖추지 못했더라고 했다. 밥 해 먹을 LP가스를 못 사 야외용 이동버너로 버티는가 하면, 그것조차 낡고 상해버려 그냥저냥 하루하루 보내는 이도 있더라고 했다.

이렇게 힘들고 외로운 이들에게 설은 더 서러운 법이다. 모두가 서로서로 고립돼 각자가 제 어려움을 저 혼자서 겪어나가야 하게 된 마당에선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셋도 될 수 있다지만, 하나하나 떨어져 있다 보니 그 각각이 하나도 못 되는 0.7 크기로 위축돼 버린 소치일 수도 있다.

큰 고개에는 팔조령이니 육십령이니 하는 숫자 이름이 붙은 경우가 더러 있다. 혼자서는 넘기 어려워 여럿이 힘을 합치고 세를 불려 그 난관을 돌파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도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간난신고를 넘으려면 꼭 그래야 한다. 나눌 물품이 없다면 체온으로라도 서로를 덥혀야 한다. 서로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고통을 나눠 줄여야 한다.

이번 설은 그렇게 우리가 따뜻한 가슴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어둡고 긴 터널이 이제 시작일 뿐 끝조차 보이지 않는다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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