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시 공성면 효곡리에 사는 시각장애인 조종분(82) 할머니는 올 설에 다시 한 살로 태어난다. 평생동안 주민등록 조차 없이 살아오다가 62년만에야 잃었던(?) 호적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주민등록 발급절차도 마쳤다.
"이제야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여…!" 오랜 세월 웃음을 잊고 살아온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할머니의 팔십 평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7세 때 안질환을 앓고난 후 시력을 잃었고, 열일곱살 때 인근 마을 22세 연상의 유부남 전모씨(작고)에게 시집을 갔다. 그래도 남편과는 정이 깊어 4남1녀를 낳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식을 모두 앞세우고 막내아들(51)만 남았다.
상주에서도 가장 오지인 효곡리 마을 꼭대기에 자리잡은 방 하나만 달랑 붙은 허물어져 가는 토담집. 할머니는 일생을 이곳에서 빈궁한 삶을 이어왔다. 호적이 무엇인지, 주민등록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아무런 정부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
마을 주민들과 옥산성당 신자 등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끼니를 이어온 할머니의 기구한 사연은 경찰이 우연하게 찾아냈다. 상주경찰서가 설을 맞아 생활이 어려운 가정을 위문하기 위해 수소문하다가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된 것.
시각장애인에다 무학(無學), 무호적으로 정부 혜택을 전혀 못받고 있다는 조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고 공성지구대 김병수 대장 등 직원들이 해결사로 나섰다. 상주경찰서 김재용 보안담당이 내서면과 상주시 민원실을 뒤진 끝에 할머니의 호적을 찾아냈다. 할머니의 호적은 친정집인 내서면 노류리에 남아 있었다. 주민등록 발급절차도 마쳤다. 이제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받고, 최저생계비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23일 기자가 방문한 날 공성지구대와 공성면 어머니경찰대 장혜욱 대장, 대원들이 생활용품과 양식거리를 챙겨들고 할머니를 방문했다. 할머니의 한 평 반쯤 되는 오막살이 집에 모처럼 훈훈한 인기척이 감돌았다.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도배를 하지 않아 빛이 바랠대로 바랜 벽지에 메케한 연기냄새가 배어있고, 미지근한 방 한쪽에는 전기밥솥과 신문지로 덮은 반찬그릇만 을씨년스럽게 자리잡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이제 외롭지 않다. 기축년 설을 앞두고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됐기 때문이다.
상주·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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