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친정 나들이 한번 못한 아내에 미안

입력 2009-01-24 06:00:00

설날 아침이다. 올해는 좀 나아지려나! 사립문 열고 기다리는 가족들 이야기를 TV로만 보던 게 내게도 현실로 다가왔다. 아들 녀석은 영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 명절이 되어도 찾아올 수 없다. 그래서 아무리 일가친척들이 많아도 자기 새끼들이 없으면 속으로는 쓸쓸한 명절이 되고 만다. 이런 떨어진 가족들 사연이 어찌 한두 집뿐이랴! 고향에 갈 수도 없고 찾아 올 수도 없는 이산가족 아닌 이산가족들 사연을 어찌 다 말로 하겠는가?

큰집에는 여든 넘긴 노인이 맏이란 의무로 평생을 봉제사 받들고 명절날 차례를 지낸다. 형제 수가 많고 조카들도 많다 보니 명절날 한번 모이면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가족들이 많다 보니 좀 섭섭한 일로 오랫동안 삐쳐서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로 마음 졸이며 속 썩이기도 한다. 미국에 가서 살다 몇 해 전 작고한 장조카는 딸만 둘이다. 외국살이 35년이 지났건만 찾아오지 않은 명절 아침은 해마다 얼마나 서운하였으랴! 또한 좁은 밴댕이 마음으로 명절 때도 오지 않는 자식들도 있다. 팔순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을 속 좁은 자식들이 어찌 알려나마는 자기 자식 키우는 마음을 돌아보면 맘속 서운한 마음도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사는 게 바쁘고 생활에 지치다 보면 가족이라는 소중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되돌아볼 겨를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앞뒤도 좀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고 안타까울 때도 있다.

까치가 뒷담 모퉁이 높은 가지 위에서 설치면 예부터 반가운 손님이 온대지 않은가. 올해는 모두가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작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달려올 수 있는 마음 비운 설날 아침이길 기대한다. 단 하루 명절이란 게 있어 재회하는 마음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우리네 고유 설날이다. 큰 집 조카며느리들 덕분에 차례 음식을 만들지 않고 명절날 아침에 참석한다. 형제나 조카들이 명절날 오후면 저마다 처갓집, 친정집 간다고 부산하게 사립문 나서지만 아내는 먼 친정 탓으로 평생 명절날 친정 나들이를 가본 적이 없다. 시댁 명절 준비로 지쳤지만 명절날 한번도 친정 나들이를 해 보지 않은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그래도 아내는 늘 일부러 푼수처럼 시댁 식구들 앞에서, 부엌 좁은 바닥에서 옹기종기 너스레도 펼치고, 코미디처럼 화기애애를 떨어 준다. 열심히 살아주고 봉제사 참석하여 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라고 핑계를 대고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던져 주지 않은 못난 사람 믿고 살아 주는 고마움을 언제 갚을지 모르겠다.

오현섭(군위군 소보면 송원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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