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는 설날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이 제일 좋아했습니다. 명절이 되면 동네로 보따리 장수가 집채만한 옷 보따리를 이고 들어옵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집이 만만한지 옷장수가 동네에 왔다 하면 우리 집에 먼저 들어왔고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옷 구경을 와서 아이들에게 입혀보고 맞는 옷을 사 입혔습니다. 귀염을 받던 옆집 순희를 위해 순희 엄마가 순희 옷을 제일 예쁜 옷으로 골라 갔습니다. 뒷집에 희남이는 막내라고 빨간 밍크잠바를 사갔고 금난이는 흰줄이 아래 위로 있는 추리닝 옷도 사가고 내 친구들이 옷 한 벌씩 골라 사가고 나니 나에게 맞는 옷은 없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설빔을 안 사줄까봐 곧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꾹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던 나는 엄마의 행동만 살피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7남매나 되는 우리 집에 누군 사주고 누군 안 사줄 수 없어 망설이다 오빠들은 바지 하나씩 사주고 나는 그래도 큰딸이라고 한 벌을 사주는데 친구들이 다 골라가고 나머지 회색 모직 바지에 베루도 빨간 잠바를 얻어 입은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좀 커서 꼭 어른 옷을 입은 것 같이 몸에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 옷을 얻어 입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매일 입어보고 설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설날이 되어야 먹어볼 수 있던 사과, 과자, 곶감 등 제사를 지내고 나면 과자를 얻어 실에 꿰어 목에 걸고 다니며 아껴먹었습니다.
엄마는 손이 문고리에 쩍쩍 얼어붙는 혹독한 추위에 윗목에 콩나물을 키우고 단술 만들고 쌀을 불려 머리에 이고 눈길을 조심조심 걸어가서 떡가래를 빼다 떡국은 안 해 먹고 떡을 토막내어 석쇠에 구워먹었습니다. 아버지는 낭비라고 안 좋아하셨지만 엄마는 아버지의 잔소리도 무시하고 설이 아니면 언제 아이들 떡을 먹여보냐고 하며 떡을 빼다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주셨습니다. 우리 집은 밥 차례를 지냈기 때문에 아버지가 볼 때는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떡가래로 구워도 주고 쪄서도 주고 고추장 넣고 떡볶이도 해 주셨습니다. 설만 되면 설빔과 떡가래를 먹을 수 있어 기다렸었는데 이제는 사주는 사람도 사줄 아이도 없습니다. 나이가 마흔 중반이 되어도 설날의 기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함종순(김천시 개령면 동부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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