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불영계곡, 청송 주왕산, 봉화 청량산, 진안 마이산, 예천 회룡포, 서울 삼각산, 거제 해금강, 부산 태종대, 부산 오륙도….
이들은 이름만 들어봐도 한번쯤 찾아가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 명승지들이다. 그리고 실제로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지역들이다.
명승이라고 하면 옛날 담배 이름부터 퍼뜩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법률적으로는 문화재 지정의 한 갈래를 말한다. 문화재보호법에는 '명승'이라고 하는 것은 "경치 좋은 곳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지난 한 해 문화재 신규지정에 관한 관보 고시내용을 정리해 보았더니, 우선 국보는 단 한 건의 사례도 없었고, 나머지 보물은 61건, 사적은 4건, 명승은 21건, 천연기념물 10건 등으로 각각 집계된다. 보물의 지정건수가 가장 많은 것은 그다지 새삼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 대신에 명승의 지정건수가 무려 21건이나 되는 점은 분명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현재 이 종목으로서 지정번호가 가장 늦은 것은 명승 제53호 '거창 수승대'이고, 그에 앞서 '사적 및 명승'으로 중도변경한 2건의 사례를 제외하면 누계치가 고작 51건에 불과한 형편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율로 보면 지난해 이 종목의 신규지정건수가 얼마나 괄목할 만큼 증가했는지는 그대로 실감할 수 있다.
더구나 지난 2003년 이전에는 지정 누계치가 6건에 머물렀으나, 신규지정건수가 2003년부터 해마다 3, 4건 정도로, 최근 연도에 이르러 2007년에 11건, 2008년에 21건으로 급증추세에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명승'의 신규지정건수가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한마디로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빼어난 경관' 자체에 대한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노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조차도 거기에 담긴 문화적 가치와 아름다운 경관이 잘 어우러진 곳이라면 기꺼이 문화재로서 지정하여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에 명승 제15호로 지정된 '남해 가천마을 다랑이논'이 이러한 인식변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죽령 옛길과 문경토끼비리, 문경새재, 순천만 등이 잇달아 명승으로 지정된 것도 이러한 흐름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논두렁과 옛 산길, 갯벌에 불과한 곳을 '명승'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문화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것은 분명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발상의 전환으로 보인다.
이곳 말고도 단양팔경과 같이 해묵은 명승지는 말할 것도 없고 제천 의림지, 구미 채미정, 예천 초간정, 영월 청령포, 제주 정방폭포, 충주 탄금대, 부산 오륙도 등 기존의 지방문화재를 명승으로 승격하여 지정하는 사례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이다. 심지어 남원 광한루원, 담양 소쇄원, 서울 성락원,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과 같이 이미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곳도 명승지로 재분류하여 지정전환하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띄고 있다.
'경치가 좋다'는 것은 분명 주관적인 판단에 좌우될 소지가 많아서 저런 것도 명승지로 될 수 있냐고 의아한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그냥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으로도, 아니면 천연기념물이거나 사적지로 남겨두어도 무방한 곳을 다소간 억지스럽게 '명승'으로 지정전환한 사례도 없지 않아 보이지만, 당분간 이러한 추세 자체가 쉽사리 바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 고장에도 명승지로 내세울 만한 경치 좋은 곳이 없는지를 찬찬히 잘 살펴볼 필요가 있는 때가 아닌가도 싶다.
이순우·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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