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경기에, 물까지 사 마셔야 하나…"
'깨끗한 물을 찾아라.'
대구 수성구에 사는 박경후(48)씨는 21일 퇴근후 곧장 집으로 가 20ℓ짜리 생수통과 1.5ℓ짜리 PT병 10여개에 수돗물을 담아 서구 평리동에 사는 부모님께 배달했다. 평리동은 발암의심물질인 1,4-다이옥산이 검출된 낙동강의 물이 공급되는 지역이다. 반면 수성구는 낙동강 물이 아닌 운문댐 물을 수돗물로 쓰기 때문에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서다. 박씨는 "번거롭더라도 당분간 부모님께 수돗물을 배달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약수터, 생수매장 북적=열흘간 계속되고 있는 1,4-다이옥산 파동으로 수돗물 공포가 확산하면서 대구 시민들이 안전한 물 찾기에 동분서주 하고 있다. 다이옥산은 끓여 먹더라도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극에 달하고 있다. 경제난속에 수돗물 파동까지 겹치면서 우울해하는 이들이 많다.
21일 달서구의 한 대형 소매점에는 생수를 사려는 손님들로 하루종일 붐볐다. 주부 김은희(34)씨는 "평소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데 다이옥산 검출 소식을 듣고 2ℓ짜리 생수 6개들이 한묶음을 샀다"며 "가계부도 적자인데 물까지 사서 마셔야하니 한숨만 날 뿐"이라고 했다.
대구지역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번주 들어 생수 판매는 급증했으며 일부 업소는 생수가 동이 나기도 했다. 대구 이마트 8개점에는 다이옥산 파문이 본격화된 19일 이후 생수 매출이 지난주 대비 20% 늘었고,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3% 증가했다. 특히 다이옥산 농도가 높은 낙동강 수돗물 공급지역인 달서구 성서·월배·달서점의 판매 증가가 두드러졌다.
약수터에는 물을 떠가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22일 오전 7시쯤 대구 남구 대명동 안일사 주변 약수터에는 물을 받으려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김인술(58)씨는 "평소 운동만 하고 내려가는데 요즘은 수돗물 불안 때문에 집에 있는 빈 통을 모조리 들고와 물을 길어간다"고 했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대림생수에도 이번 주 들어 시민들의 발길이 평소보다 두배 이상 늘었다. 이곳 관리인은 "평일 하루 200명이 다녀가는데 요즘에는 500명 이상으로 늘었다"며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행렬이 끊이지 않고, 물을 긷는 양도 한 사람당 평균 150ℓ 정도에 이를 정도"라고 했다.
◆그릇도 못씻겠다=마시는 것은 물론 그릇을 씻거나 목욕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달서구 상인동에 사는 전영옥(33·여)씨는 요즘 설거지를 하는데 마트에서 사온 생수를 사용한다. 전씨는 "일단 수돗물로 대충 헹군 뒤에는 생수로 다시 깨끗하게 씻는다"고 했다.
아기를 둔 엄마나 임신부들의 불안감은 더욱 크다. 김모(28·여)씨는 "돌이 갓 지난 딸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매일 수돗물을 팔팔 끊여 사용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생수라도 퍼와 아이를 목욕시켜야겠다"고 걱정했다. 서수보(33·중구 남산동)씨는 세수를 하거나 양치를 할 때도 정수기 물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수기로도 다이옥산이 걸러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는 지하수를 쓰는 목욕탕을 찾고 있다. 서씨는 "수돗물로 세수를 하면 다이옥산이 얼굴에 묻어 있을 것 같아 찜찜해 목욕탕에 갈 수밖에 없다"며 "공짜로 쓰는 수돗물도 아닌데 시민들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어야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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