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실패에 번번이 血稅 투입/그러고도 中企.서민엔 푸대접
민간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IMF 사태 이후 불과 10여년 만에 다시, 국민(납세자)의 돈이 '은행 살리기'에 쓰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쯤에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민간은행은 어엿한 사기업이다. 더욱이 은행 소유자(주주) 중 70~80%는 외국인이다. 이런 사기업에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야 한다니? 독자들 중엔 식당 등 소매업을 경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가게가 휘청거린다고 어디 국가가 도와주던가.
그러나 필자는 은행이 어려운 경우엔 국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당연하며 정당하다고 믿는다. 우선, 은행이 망하는 바람에, 수많은 시민들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곧바로 사회적 패닉 상황이 발생한다. 국가보험으로 예금의 일부분(5천만원까지)을 보장한다지만, 국민의 돈이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은행은 작은 업체(자영업 포함)에서 재벌그룹에 이르기까지 기업들과 매우 복잡한 채권-채무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채권-채무 관계의 중심인 은행이 쓰러지면 전체 국민경제가 마비될 수 있다. 즉, 은행이 무너지면 그 사회적(공적) 폐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정당하다 해도, 납세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따져야할 것이 있다. 바로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이다. 은행들이 국민의 돈으로 회생했다면 국민들에게 이바지해야 한다. 그러나 10년 전의 외환위기를 국민의 돈으로 극복하고 몸집을 키운 은행들은 그동안 어떻게 처신해 왔는가.
유감스럽게도 국민 중 대다수인 서민들에게 은행은 '가기 겁나고 갈 때마다 불편하고 짜증을 느끼는' 공간이 되었다. 은행의 입장에서 서민들은 푼돈이나 입금하고 대출해가며 이자수익도 변변치 않은 3등 고객일 뿐이다. 서민에 대한 푸대접에 반비례해서 부유층 자산관리 부문은 대폭 강화되었다. 또한 은행들은 기업과 가계의 잠재력 및 상환 가능성을 정확하게 판단해서 대출하는 '본업'을 게을리 했다. 그 대신 첨단금융산업을 한답시고 심지어 외국의 위험한 투자상품(각종 펀드, 키코 등)을 들여와 서민과 중소기업에게 마구 팔아댔다. 행원들에게 투자상품 판매실적을 올리라고 강압함으로써, '불완전 판매'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뿐 아니라, 외환을 빌려 국내 부동산 시장에 마구잡이로 대출,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해쳤다.
이런 식의 영업 덕분에,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형 시중은행들의 순이익은 각각 1조원 내외에 이르렀다.(IMF 사태 이전엔 국내 은행들의 수익을 모두 합쳐도 수천억원 대에 불과하거나 심지어 적자인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봤자 뭐하는가. 재미를 본 사람들은, 엄청난 배당금을 챙길 수 있었던 은행의 주주들뿐이었다.
물론 은행들이 이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있다. IMF 사태 이후 한국정부들은 은행들에게 이상과 같은 방향으로 운영하면 생존할 수 있고, 아니면 구조조정 당할 수밖에 없다고 끊임없이 압박해왔다. 은행들에게, 대출해서 이자나 챙기는 '째째한' 예대마진 사업보다 국제적인 금융투기장에 뛰어 들어 '큰 돈'을 벌어오라고 강압해왔던 것이다.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다시 논의되는 상황은, 이런 방향의 금융개혁이 반서민적이며 지속될 수 없는 시스템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자금이 다시 은행에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국민)들이 다짐해야 할 원칙이 있다. 국민의 돈으로 회생한 은행은 국민경제와 서민의 이익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제 은행은 잠재력 있는 기업과 사람에게 적절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공급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실한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의욕에 넘친 중소기업인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부도를 내거나, 사채업자를 찾아갔다가 인생을 망치는 비극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은행들의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경영진은 퇴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 경영진들 덕분에 높은 배당수익을 누려온 주주들에 대해 '기존의 권리를 줄이는 조치'(감자'減資)를 취해야 한다. '잘 나갈 때'의 고수익은 독점하고, '어려울 때'의 손해는 다른 사람들(납세자들)과 공유하려 든다면 이는 시장원칙에도 어긋난다. 공적자금이 은행에 투입되는 경우, 납세자들은 사실상의 주주나 채권자가 된다(투입 방법에 따라). 우리(국민)들은 이런 권리를 자각하고, 정부가 금융시스템을 국민경제와 서민들에게 친화적인 방향으로 개혁하는지, 아니면 다시 투기와 도박판을 조장해 일부 부유층과 외국자본만 이롭게 할 것인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이종태(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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