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비슬산] 얼음축제에 가보니

입력 2009-01-20 06:00:00

▲ 비슬산 휴양림 입구에 인공으로 조성한 얼음동산. 계곡을 따라 거대한 폭포수가 멈춰선 듯 장관을 이뤄 겨울 비슬산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비슬산 휴양림 입구에 인공으로 조성한 얼음동산. 계곡을 따라 거대한 폭포수가 멈춰선 듯 장관을 이뤄 겨울 비슬산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얼음동산 앞에 전시중인 얼음조각들. 대견사지 삼층석탑(왼쪽)과 용의 모습이 멋지다.
▲ 얼음동산 앞에 전시중인 얼음조각들. 대견사지 삼층석탑(왼쪽)과 용의 모습이 멋지다.
▲ 비슬산 청소년수련원 인근에 위치한 암괴류. 빙하기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바위군락은 길이가 약 2㎞로 세계최대 규모다.
▲ 비슬산 청소년수련원 인근에 위치한 암괴류. 빙하기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이 바위군락은 길이가 약 2㎞로 세계최대 규모다.

겨울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눈과 얼음이다. 20~30년 전만 해도 눈 내린 초가지붕 처마에 고드름이 달려있고 냇가·연못은 꽁꽁 얼어 아이들은 얼음을 지치며 놀았다. 요즘 겨울에는 눈을 거의 볼 수 없고 강물이 얼지도 않는다.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 놀이를 하거나 얼음 지치면서 모닥불을 쬐다 양말을 태워 먹었다는 것은 동화 속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비슬산에는 옛 추억을 어느 정도 떠올릴 만한 겨울 행사가 있다. 1, 2월에 열리는 얼음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겨울 운치로는 그저 그만…

비슬산 휴양림에서 차를 내려 소재사 가는 길로 10여분 걸어가면 비슬산 휴양림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얼음축제가 한창이다.

휴양림 입구를 지나자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장승이 늘어서 일행을 환영한다. 돌다리를 건너자 매표소 왼쪽에 얼음동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얼음병풍 앞으로 계곡을 따라 군데군데 얼음기둥이 턱 버티고 있는데 장관이다. 얼음기둥은 보통 높이가 8~10m, 둘레가 어른 4~5명이 마주 잡아야 할 정도다. 가족단위 관람객들은 사진찍기에 한창이다.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과 이를 지켜보는 어른들의 눈가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 때마침 "우르르, 꽝" 소리에 눈을 들어보니 큰 고드름을 단 나뭇가지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손을 놓았나 보다. 자칫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음빙벽과 기둥은 먼저 구조물로 틀을 잡고 노즐로 물을 뿌려 얼렸다. 인공으로 만든 얼음동산이지만 겨울운치로는 그저 그만이다. 비슬산 휴양림 김형석 담당은 "계곡에 빛이 드는 시간이 하루 1, 2시간 정도여서 얼음빙벽 만들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그는 "비슬산에서 얼음축제를 연 지 올해로 8회째"라며 "매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특히 가족 단위가 많고 빼어난 모습을 담기 위해 전국의 사진 작가들이 대거 몰려든다"고 자랑했다.

빙벽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나무다리에 비닐을 덮고 물을 뿌려 만든 얼음동굴과 에스키모의 집, 고드름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밤에는 일몰부터 자정까지 무지갯빛 조명을 비추는데 주위는 온통 신비함으로 가득하다. 산속에서 밤 추위와 싸우며 얼음을 구경하는 맛은 필설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환상적이다.

이곳에선 '얼음조각전'을 앞두고 조각품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커다란 얼음덩이에 전기톱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지나가면 마치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하듯 새로운 조각물이 형태를 드러낸다. 정교한 손놀림에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다. 비슬산을 상징하는 '대견사(大見寺)지 삼층석탑'이 위용을 뽐내고 있고 화재로 소실된 남대문이 부활돼 관람객들의 흥취를 돋우고 있다. 용이 자태를 뽐내는 곳에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이곳 관계자들은 "기축년을 상징하는 황소, 크렘린 궁전, 유니콘, 라이언 킹 등 9점의 얼음 조각품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행들과 계곡 언저리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인근 마을에서 고구마를 사다 호일에 구워 먹었다. '꿀맛'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모양이다.

◆암괴류의 위용

얼음동산을 뒤로하고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왼쪽에 통나무집이 보인다. 3, 4개씩 모두 10개가 지어져 있다. 자귀, 은행, 팽, 잣나무 등으로 모두 나무 이름이 붙여져 있어 더욱 정겹다. 좀 더 올라가니 탐색도로라는 조그만 문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돌 너덜이 펼쳐져 있고 군데군데 돌탑이 쌓여있다.

청소년수련원 오른쪽 계곡에는 더 넓고 큰 바위들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비슬산이 자랑하는 암괴류(岩塊流)다. 암괴류는 지난 2003년 천연기념물 435호로 지정됐는데 1만~8만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 때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폭 80m, 길이 2㎞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암괴류는 풍화된 암석조각들이 급경사면으로 떨어져 나가 절벽 밑에 부채꼴 모양으로 쌓인 각진 돌의 집단(애추·崖錐)과 화강암 기반암이 지하에서 심층풍화로 인해 부서진 작은 물질이 제거되고 남은 화강암체(토르)로 구분된다. 비슬산에는 두 가지 형태의 암괴류가 고루 분포돼 있다. 뾰족뾰족한 칼바위는 주로 애추며 부처바위, 형제바위, 스님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큼직한 바위는 토르로 보면 된다.

암괴류를 보고 내려가는 길에 휴양림 관리사무소에 들르자 1층 현관에 박제된 호랑이가 포효하듯 노려본다. 비슬산 호랑이인가. 아니란다. "지난해 10월 달성공원에서 늙어 죽은 벵골호랑이를 기증받아 교육·전시용으로 박제했다"는 게 직원 정철웅씨의 설명이다.

그는 "비슬산 일대에는 호랑이, 곰, 맹금류는 발견되지 않는다"면서도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를 비롯해 멸종식물로 알려진 흰진달래 등이 서식하고 정상 부근 1백만㎡에는 진달래 군락이 자리 잡아 매년 봄에 연분홍빛의 '참꽃 축제'가 열린다"고 설명했다. 비슬산은 꽃, 식물의 보고로 정겨움을 주는 산이라고 했다.

문을 나서니 찬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재잘거림에 눈을 돌려보니 광장에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추위를 잊은 아이들과 부모가 어우러져 팽이 돌리기와 얼음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모든 근심, 걱정을 훌훌 날려버리고 놀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겨울나들이로는 너무 멋지지 않은가.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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