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빗장을 계속 열어둘 것인가

입력 2009-01-15 10:59:35

中, 첨단기술 '먹튀' 위험수위/전략산업 무방비 노출 막아야

2005년 1월 27일. 상하이차가 5억 달러(5천900억 원)인 쌍용차의 매각대금을 완납하자 주채권단은 쌍용자동차의 워크아웃 종료를 선언했다. 정부와 재계의 관심은 쌍용차가 5년간의 지긋지긋한 워크아웃을 졸업했다는 사실에 쏠려 있었다. 주채권단은 '든든한 자금과 중국시장을 가지고 있는 전략적 투자자가 인수한 것을 감안하면 이해 관계자 모두가 윈-윈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중국으로의 투자가 일반적이었다면 쌍용차 인수는 중국이 한국으로 투자하는 첫 번째 대규모 투자사례'라며 치켜세웠다. 쌍용차 노조가 '수십 년간 쌓아온 자동차 기술 이전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던 쌍용차에 새 주인을 찾아주었다는 환호에 묻혔다. 일부에서는 외자 유치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후 5년. 쌍용차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업계서 주목받던 기술을 고스란히 상하이차에 넘겨준 채 '兎死狗烹'(토사구팽)의 아픔을 겪고 있다. 상하이차가 쌍용차에서 손을 떼는 수순을 밟자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여야는 쌍용차 지원 방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M&A라는 합법을 가장한 중국기업의 '먹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 중국 비오이 그룹이 하이닉스반도체의 액정표시장치(LCD) 사업부였던 하이디스를 4천억 원에 매입했을 때도 똑같았다. 비오이 그룹은 약속했던 투자는커녕 하이디스의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 관련기술 등 핵심기술만 쏙 뽑아갔다. 더 이상 빼먹을 것이 없게 되자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도 쌍용차와 닮은 꼴이다.

우리 정부나 주채권단은 과거 비오이그룹의 행태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상하이차가 똑같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여전히 빗장을 열어뒀다. 비오이그룹이 하이디스를 버렸을 때 국회와 재계는 기간산업에 대해 적대적 M&A를 규제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됐다. 국가 전략 산업이 채권 회수에만 급급한 금융기관에 맡겨지고 그것이 외자 유치라는 허울로 포장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배웠어야 했다.

물론 외국인 직접 투자는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일자리도 창출하는 긍정적 측면을 갖는다. 그래서 각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외자 유치에 목을 맨다. 그럼에도 외자 유치는 양면의 칼이다. 외자 유치를 무조건 반기기보다는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이유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그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외국인 직접 투자는 '악마와의 거래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국인 직접 투자로부터 진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정부의 현명한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국가 기간산업 M&A에 대한 보호막은 두텁다. 지난 2005년 중국해양총공사는 미국 석유회사 유노칼을 인수하려다 실패했다. 자국의 석유회사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한 미 의회가 국가안보상 이유로 M&A를 무산시키도록 결의한 것이다. 아랍 에미리트연합의 국영기업 '두바이포트월드'도 지난해 미국의 주요 항만 운영권 인수를 추진했으나 좌절됐다.

일본은 주요 산업에 대해 외국 기업의 M&A 계획을 심사한 뒤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일본 게이단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 경제와 안전보장에 영향을 주는 생산 설비를 가진 기업'으로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외국 기업의 적대적 M&A까지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덕분에 수많은 외국 자본과 회사들이 우리나라의 첨단기업에 대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아직까지 기술수준이 우리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중국은 가장 적극적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무선통신기술, 반도체, 자동차는 물론 전 산업에 걸쳐 전 방위적인 기술 습득을 추진하고 있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중국이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 이상 국가 전략 산업을 외국 기업 사냥꾼들의 '먹튀' 대상으로 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가의 미래 성장 엔진이 기업 사냥꾼에 의해 꺼지도록 버려둘 수는 더욱 없는 노릇이다.

鄭昌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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