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 얌체족들 '활개'

입력 2009-01-15 09:45:51

대구 서구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일감은 줄었는데 할 일은 두배로 늘었다. 예전 노인들이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오면 대형 저울에 얹어 손수레를 뺀 나머지 무게(kg)로 돈을 쳐 줬지만 요즘에는 폐지를 일일이 내려 확인하고 무게를 재기 때문이다.

김씨는 "무게를 늘리기 위해 고의로 폐지에 물을 먹여 오는 넝마꾼들이 생겼다"며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어려우면 그러겠느냐'는 생각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기 한파가 지속되면서 자그마한 경제적 이득을 노리고 얌체짓을 일삼는 시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모은 폐지에 물을 뿌려 무게를 부풀리는 얌체 넝마꾼부터 남이 내다 놓은 쓰레기 종량제 봉투와 음식물 쓰레기 납입 스티커까지 싹쓸이하는 이들까지 있다.

한국제지공업협동조합은 일부 폐지 압축장과 수집상(고물상)들이 폐지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물을 뿌리는 '가수(加水)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지난해 10월부터 연말까지 신고자에게 최고 50만원을 지급하는 '신고포상제'를 시행했다. 조합 관계자는 "물을 뿌려 폐지의 무게를 늘리는 수집상과 넝마꾼들이 많아져 한시적으로 포상제를 실시했는데 신고가 여러건 들어왔다"고 말했다.

달서구에 사는 주부 이모(42)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매번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 집앞에 쓰레기를 내놓았지만 쓰레기 무단 투기로 구청에서 과태료 청구서가 날아왔기 때문. 이씨는 "꼬박꼬박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이용하는데 누군가 쓰레기만 빼놓고 봉투를 빼 간게 분명하다"며 억울해했다.

수성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3)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납입 스티커(필증)를 용기에 붙여 음식물 쓰레기를 내놓았는데 구청에서 납입 스티커가 없다며 수거를 해가지 않아 황당했다. 김씨는 "몰래 납입 스티커를 떼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직접 당하니 화가 난다"며 "심지어 떼간 스티커를 헐값에 다시 판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며 혀를 찼다. 납입 스티커는 종량제 봉투와 마찬가지로 용량에 따라 100원대에서 몇천원에 구입해야 한다.

우체함이나 집앞에 있는 신문도 자주 없어지고 있다. 원룸에 사는 대학생 박모(25·북구 산격동)씨는 1층 우체함에 배달되는 신문이 매일 없어지자 원인을 추적했다. 범인(?)은 폐지를 줍는 할머니였다. 박씨는 "폐지를 주우려는 노인들이 워낙 많아 신문을 빼가게 됐다는 할머니의 말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고 했다.

달서구청 한 관계자는 "얼마전만 해도 쓰레기 봉투가 없어졌다는 민원이나 쓰레기 투기 신고(포상금 5만원)가 아예 없었는데 지난해말부터 지금까지 한달 만에 100건이 넘었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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