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일본인 결혼이주여성 나구모 노리코(50·청도군 이서면)씨의 집은 새해맞이로 분주했다. 연탄재를 나르는 것부터 뜰 쓸기, 골목길 청소까지 온 가족이 나서서 구슬땀을 흘렸다. 독감에 걸려 연방 코를 푼 탓에 코끝이 빨개져버린 향은(15·여)이도, 요리사가 꿈인 향숙(11·여)이도 걸레 하나씩 들고 방바닥을 지그재그로 닦았다.
25년 전 한국으로 시집 온 나구모씨는 다섯 남매를 뒀지만 누구 하나 구김이 없다. 어엿한 여대생인 된 첫째 향민(21)씨, 둘째 가희(20)씨부터 일본어 번역가가 되고픈 효성(17·고교2년)이, 대학 교수가 꿈인 향은이, 막내 향숙이까지 말썽을 피워 본 적이 없다.
나구모씨는 "시집 오자마자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본어 강사로 나섰지만 아이들에게만큼은 소홀해지지 말자고 다짐했다"며 "오전 4시에 일어나 새벽반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깨기 전에 돌아왔고 아이들 아침밥과 도시락, 학교 준비물을 모두 챙겨놓았다"고 말했다.
남매들이 반듯하게 자라기까지 엄마의 역할이 컸다. 나구모씨는 자녀들의 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한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함께 공부하고 문제를 풀어가며 100점이 나올 때까지 연필을 잡기도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부모 자식 간 정서적 교감과 부모의 정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경북 구미시 결혼이민자지원센터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엄마와 함께 Play, Play' 프로그램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인수(가명·5)는 이 프로그램에서 엄마와 함께 율동과 노래를 하면서 안정을 되찾았고, 정서불안증에 시달렸던 진혁(가명·4)이도 부모와 한 공간에서 살을 부대끼며 평온해졌다. 장정자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누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불안해했지만 '부모와의 꾸준한 정서적 교감'을 가지면서 점차 나아졌다"며 "부모와 자식 간의 '혈육의 정'을 지속적으로 나누고 확대하면 아이들 정서안정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임상준기자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남아공 대통령·호주 총리와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