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3기입니다. 현재 항암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기흉이라는 게 있는데요. 일종의 폐암 합병증입니다. 폐막에 공기가 차서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죠. 호흡 곤란을 막기 위해서 지금은 가슴에 관을 꽂아둔 상탭니다. 현재 기흉을 제거하는 수술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왼쪽 폐에 있는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진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환자가 항암치료를 힘들어하지는 않네요. 비교적 젊은 나이기 때문에 항암치료에 잘 적응한다면 3년 이상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남대병원 의료진은 최춘호(49)씨의 상태를 10여분간 차근차근 설명했다. 암담하진 않지만 눈이 번쩍 뜨일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60㎏대를 유지하던 몸무게가 50㎏대 초반으로 떨어지고 잦은 기침에 시달리던 최씨는 그저 감기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감기약에 의존한 것만 1년여. 폐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지는 지난해 9월에야 알았다. 젊은 시절 20년 가까이 도금공장에서 일했던 게 화근이었다.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최씨의 더벅머리가 민머리가 되기까지 채 4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미연이, 수연이 두 딸이 아홉살, 일곱살인데 제법 어른스러워요. 그런데 아내가 정신지체 장애인이거든요.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 제 엄마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씨 가족이 살고 있는 경북 김천시 농소면 노리실마을. 60가구가 살고 있는 꽤 오래된 마을이었다. '老吏실'이라는 이름에서처럼 마을은 나이 들어 은퇴한 관리들이 모여 살아온 곳. 최씨네도 조부 때까지는 농소면에서도 이름난 '백석꾼'이었다고 마을 주민들은 설명했다. 주민들은 "인심도 좋아 덕을 쌓아온 집안에서 왜 저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며 하나같이 안타까워했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니까 '청년'이지. 이웃 일도 잘 도왔어. IMF 이후에 집으로 와서 부모님을 혼자 모셨거든. 농촌총각이라 결혼하기가 좀 힘들었지. 부인이 약간 모자란 구석이 있어도 좀 가르치면 잘 따라했어. 그런데 이 청년이 4, 5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라고."
면사무소 관계자와의 상담내역에도 최씨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기록돼 있었다. "일반부채가 3천만원 가까이 되네요. 신용불량자로 돼 있습니다. 저도 최씨 집 사정이 딱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의료비 지원 신청을 했었어요. 동네 주민들도 자기 일처럼 돕는 거 같더라고요. 초교 동창생들이 같이 하는 계가 있는데 몇 년간 모은 계금 500만원을 최씨 치료비로 쓰라고 내놨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최씨의 아내 서해진(33)씨는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언제 쌓아뒀는지 모를 땔감이 조금씩 줄어드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인사를 하는 서씨는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서씨는 언제 땔감을 장만해 뒀는지 등 옛날 기억을 되새기는 데는 힘들어했다. 아궁이와 연결된 사랑방에 들어서자 검정색 벽이 얼른 눈에 들어왔다. 얼핏 봐서는 아이들의 색칠놀이 흔적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곰팡이였다. 안방도 있었지만 가족들은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는 안방을 대신해 아궁이로 불을 지피는 사랑방을 쓰고 있었다. 어른 2명이 누우면 딱 맞을 방이었지만 네 식구가 겨울이면 이곳에서 생활해왔다고 했다. 월 48만원의 생계급여로 생활하기 때문에 삶에 큰 변화는 없다고 마을 어르신 중 한분이 귀띔했다. 온기가 전혀 없는 안방에는 4년 전 찍은 가족사진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풍성한 머리숱이 유난히 돋보이는 최씨의 두 팔에는 두 딸이 폭신하게 안겨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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