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모으니 우주가 돕더군요" 한들마을도서관 유정실 관장

입력 2009-01-10 06:00:00

▲ 한들마을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동네 아이들.
▲ 한들마을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동네 아이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선생님이 노후에 소일거리 삼아 마을도서관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금전적 여유도 있어서 도서관 문을 열 때 1천만원을 기부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저 '관장님'이라는 직함이 좋아서 도서관에 들락거린다고 판단했다. '한들마을도서관'(대구 동구 지묘동)을 찾아갈 때만 해도 기자에게 이런 선입견이 있었다. 근거도 없는 편견과 섣부른 생각을 갖고 3층에 자리한 도서관으로 올랐고, 100분 간의 인터뷰를 마친 뒤에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 "꿈이 있으니 우주가 돕더라"며 마치 10대 소녀처럼 수줍게 웃어보이는 유정실(65) 한들마을도서관 관장. 그에게 60대는 인생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꿈을 펼치는 나이였다.

◆황무지에 핀 작은 꽃 한송이

-먼저 한들마을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시죠.

"지난 2005년 5월 25일 문을 연 순수 민간의 힘으로 만든 작은 도서관입니다. 재정 지원이나 공간 확보에서 공공지원이 전혀 없이 순전히 주민들의 힘으로 만든 도서관이죠. 행여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 저 혼자 만든 줄 아실까봐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그저 작은 씨앗을 뿌렸을 뿐입니다. 지묘초교(교장 역임)에 근무하면서 동네 여건을 보니까 너무 열악했어요. 말이 대구시내지 시골 같았습니다. 서점 하나 없었거든요. 문화공간이 정말 아쉬웠죠."

-책을 모으는 일부터 도서관 장소를 마련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지금 자리를 잡고 보니까 별 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에 수 천 권의 책을 쌓아놓고 보니까 막막한 거예요. 그렇게 책을 모으는 것도 봉사자 한 분, 한 분의 도움이었죠.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동네 학부형을 통해 수소문을 해봤더니 앞서 그런 생각을 가진 분이 있었다는 겁니다. 주민 서명까지 받아서 컨테이너 도서관이라도 만들려고 했는데 쉽지 않아서 좌절하고 말았다더군요. 출발점이 되겠다싶어 기뻤죠. 당시 불로중학교 교무부장으로 계시던 김민자 선생님인데, 그 분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선뜻 승락하셨죠."

-한 두 명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로 생각됩니다만….

"제가 2005년 2월 28일자로 퇴임했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도 가질까 생각했는데 쉬면 못 할 것 같아서 16명이 모여 도서관 발족위원회를 꾸렸습니다. 학부모, 동창회장, 공산농협 조합장 등이 나서주셨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인물을 찾으니까 의외로 많더군요. 동네에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퇴임 교수님도 계셨습니다. 마을 노인정 한 켠에 독서실이라도 꾸미고 싶어하던 분이셨죠. 정말 '꿈이 있으면 우주가 돕는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장소를 물색하는데 마침 공산농협 3층 공간이 비어있는 겁니다. 주민과 농협이 함께 상생하는 길이라며 조합장님도 조합원 회의를 통해 기꺼이 장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을 하셔서 일이 진행된 겁니다."

◆꿈이 있으니 우주가 돕더라.

-3월부터 준비를 했다고 해도 5월말까지 개관하기는 힘들었을텐데?

"실무팀이 꾸려진 뒤 매주 목요일 노인정에 모여 회의를 하고 일을 나눴습니다. 현수막을 내걸고 책을 기증받고, 회원도 확보했죠. 책을 사려면 돈이 필요한데 유료 회원이 있어야 하잖아요. 애초 가구당 연간 1만 원을 받는 회원 500가구를 목표로 세웠는데 350여 가구가 모였습니다. 그 정도도 놀라운 거죠. 기증받고 구입하고 협찬받은 책으로 시작했습니다. 권당 1만원만 잡아도 5천권을 사려면 5천만원이 필요한데 돈이 부족했죠. 힘들게 3천여만원을 확보해서 대부분 책을 샀습니다. 기증받은 책 중에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은 드물어요. 현재 장서 중에 기증받은 책은 5%도 안 됩니다. 새 책을 구입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어떤 책을 구입할 지 일일이 토론하고, 책 한권마다 바코드 붙이고 도장 찍어서 전산시스템에 입력합니다. 전문업체에 맡기면 권당 500원씩 줘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 동네에 사서자격을 가진 분이 3명이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부탁을 했죠. 개관 날짜를 정한 상태에서 책은 밀려들고.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두명이서 전산작업을 하는데 손등이 다 부을 정도로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도 고마워서 그 분들께 답례를 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선풍기를 기증하더군요. 돈을 받고자 했으면 손등이 부을 정도로 못했을 것이라고 말씀하면서."

-개관 후 3년 반 정도 지났는데 처음보다 많이 성장했죠?

"꾸준히 책을 사 모은 덕분에 장서 규모는 3배로 성장했습니다. 재작년 '작은 도서관 돕기 공모'에 응시했는데, 전국 204개 작은 도서관이 경쟁한 가운에 우리가 선정된 71곳 도서관 중에 뽑혔습니다. 컴퓨터, 복사기, 빔프로젝트, 정수기, 디지털카메라와 책 등 3천만 원 상당의 컨텐츠를 제공받았습니다. 한번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된 거죠. 공공사립도서관으로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원래 조건은 열람공간이 70평은 돼야 하는데, 우리는 부족했어요. 다행히 공산농협에서 도움을 줘서 옥상에 온실 열람실을 만들었고 결국 공공사립도서관으로 지정돼 대구시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2007년에 3천만원, 작년에 3천900만원을 받았습니다. 이 중에 책값은 2천만원, 나머지 1천900만원은 운영비인데, 이렇게 지원받게 된 덕분에 올해 처음으로 전문 사서를 정식 공채를 통해 채용했습니다."

◆1천800여 회원 가족의 꿈을 키우는 공간

-한들도서관은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도 이름이 높은데요?

"방학이면 오후 시간에 열람실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평소에도 하루 100명 정도가 이용하죠. 이들을 위한 문화강좌를 많이 열고 있습니다. 수강료는 받지 않습니다. 강사료만 운영비에서 3만~5만원 정도 지급할 뿐이죠. 초·중학생 독서지도 프로그램뿐 아니라 성인 프로그램도 활발합니다. 특히 엄마들이 참석하는 '역사 스터디'는 열기가 굉장합니다. 우리 도서관 이용자 중에 한 주부께서 정말 열성적으로 역사를 공부하시길래 스터디를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제안했죠. 그렇게 꾸려진 스터디 모임이 일년반 정도 지속된 뒤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주관하는 역사인증시험이 있는데, 이곳 스터디에서 공부하는 회원 8명이 응시해서 전원 합격한 겁니다. 현재는 역사 스터디에 기초반, 심화반으로 나뉘어서 30여명이 교육받고 있습니다. 영어 스터디도 활발해요. 우리 도서관에 마련된 영어동화을 이용해서 젊은 엄마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제도 연다구요?

"작년을 원년으로 해서 '한마을 한 책 함께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어린이,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을 정해서 모두 읽은 뒤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겁니다. 주민들에게 운동 취지를 설명한 뒤 추천기간 중에 좋은 책을 추천받고, 도서선정위원회에서 가장 적합한 책 5권을 정한 뒤 위원들이 다 읽어보고 마지막에 토론을 거쳐 한 권을 정합니다. 작년에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지은이 포리스트 카터)로 정했습니다. 100권을 구입한 뒤에 봉사자분들이 은행과 마트 앞에서 어깨띠를 두르고 홍보하면서 책을 빌려주었습니다. 모두 돌려본 뒤에 회수해서 반값에 다시 판매했죠. 올해는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선정됐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이 모두 읽은 책을 주제로 축제를 여는 겁니다. 책에 있는 좋은 문장 가려내서 발표하기, 책 속의 캐릭터 그림으로 표현하기, 독서퀴즈 골든벨, 주인공 이름으로 3행시, 5행시 짓기 등을 합니다. 지난해에는 9월에 열었는데 200명 가까운 주민이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도서관이 문을 열고 난 뒤에 가장 힘든 일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모르겠지만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늘 그 정도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고, 또 그런 일들이 제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습니다. 힘들어서 못 꾸려나가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도서관은 제가 꾸려나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 도서관에 자원봉사자가 무려 43명입니다. 바로 이 분들의 힘이죠.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분들이 이런저런 형편상 봉사를 못할 상황이 생기면 항상 뒤를 이어주는 봉사자가 나선다는 겁니다. 저는 '시크릿'(긍정적인 생각과 간절한 믿음이 만났을 때 원하는 것이 이뤄지게 한다는 내용의 베스트 셀러)을 믿습니다. 우리 도서관에서 좋은 파장이 나가고, 그래서 여기서 봉사하는 분들에게도 복이 있다고 믿어요."

◆독서는 꿈을 가꾸는 소중한 자산

-이처럼 작은 도서관을 만들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6·25가 일어난 해에 초등학교 1학년을 보냈고 한창 전후 복구가 이뤄지던 시절에 학교를 다녀 책을 모르고 자랐죠.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해리 포터'를 읽어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 판타지에 다가갈 수가 없는거죠. 어려서 그런 경험을 전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입시나 시험 중심의 공부는 실력이 아닙니다. 독서와 경험을 통해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고, 삶이 풍요해지고, 가치관이 세워지는 것이죠. 모든 것에서 독서가 기본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만 중시합니다. 도서관을 지어놓고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합니다. 교감, 교장이 됐을 때 교육청에서 '독서시범학교'를 선정한다고 하면 무조건 따냈습니다."

-은퇴 후 편안히 쉴 수도 있었을텐데요?

"지금은 다 결혼해서 아들은 서울에, 딸은 구미에 사는데,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작은 도서관을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더니 만류하더군요. 그간 하루도 못쉬고 달려왔는데 여행도 다니면서 일년쯤 쉬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했죠.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고, 너희들 키우느라 누군가를 돌보지도 못 했다. 나머지 인생은 이웃과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고. 그렇게 남편과 자녀들의 동의를 구하고 일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처음 시작할 때도 많은 돈을 내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형편은 안 되더군요. 저는 마음만 부자랍니다."

-앞으로 어떤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으십니까?

"내년에는 공공사립도서관 예산도 조금 줄 것 같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걱정은 안 합니다. 빠듯한 살림 속에 꾸려나가면 되니까요. 다만 도서관이 너무 좁아서 걱정입니다. 장서를 늘리기에도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우리 도서관을 새로 짓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좋은 장소를 물색해뒀는데 예산은 감히 넘보지도 못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용자들에게 농담삼아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땅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 도서관이 들어설 땅이라고 믿고 가라고. 그러면 언젠가 뜻이 이뤄진다'고. 일단 1억 원을 모아서 도서관 건립의 씨앗이라도 마련하고픈데, 그래서 주민들의 열성적인 참여 속에 바자회도 열었어요.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 낼 겁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유정실 관장은?=유정실 관장은 1943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입학을 즈음해 6·25를 겪었고 전후 복구가 한창이던 때 책이 없어서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을 지냈다. 안동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1962년부터 만 43년간 교직에 몸 담았으며, 2005년 2월에 지묘초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을 떠났다. 여행도 다니며 쉬라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도서관 건립 준비에 나섰고 그 해 5월 꿈에 그리던 마을도서관을 열게 됐다. 대구 동구 지묘동 공산농협 서부지점 3층에 문을 연 '한들마을도서관'은 유 관장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 모두의 힘으로 만든 것. 회원 가족 1천300여 가구와 자원봉사자 43명이 꾸려나가는, 지묘동 주민들에게 있어 꿈의 공간. 장서 규모가 1만5천여 권에 이른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