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도 경영난…속병앓는 곳 적잖다

입력 2009-01-10 06:00:00

▲ 최근 도심의 빌딩마다 첨단 장비와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의원들이 잇따라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초기 투자비용은 5억원대에 이르지만 불황에다 의료기관 포화상태를 맞으면서 금융 비용과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의원들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최근 도심의 빌딩마다 첨단 장비와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의원들이 잇따라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초기 투자비용은 5억원대에 이르지만 불황에다 의료기관 포화상태를 맞으면서 금융 비용과 인건비조차 감당하기 힘든 의원들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최근 들어 신축 상가건물에 가장 많이 입주하는 업종은 단연 병·의원들이다. 아예 '메디컬 빌딩'을 내세우며 건물 전체를 개원 의원들로 가득 채운 건물도 생겨날 정도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상가건물마다 세입자를 찾기 힘들지만 병·의원만큼은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문을 연다. 과연 운영이 제대로 될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10월 춘천에서는 의사가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의 병원에 고의로 불을 지르기도 했다. 한때 순수익 3천여만원을 버는 등 호황을 누렸지만 지난해 6월 의료사고 이후 환자가 급격히 줄면서 경영난이 심화됐기 때문. 지난해 11월에는 원주에서 한 산부인과 원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개원 후 5년간 임대료를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 스스로 '위기'라고 말하는 개원가 현황을 살펴보자.

◆신규 개원은 거의 중단 상태

대구 성서 한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부 최모(37)씨는 자주 가던 내과와 소아과가 최근 없어져서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네거리 쪽에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외딴 상가에 있는 의원들이 문을 닫거나 옮겨 갔기 때문. 북구 침산네거리 인근에는 의원 20여곳이 밀집해 있다. 다사·죽곡지구를 비롯해 신축 건물이 들어서는 곳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얼핏 보기에 대구시내에 신규 의원들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다르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곳으로 이전 개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전체 숫자는 비슷하다.

대구시의사회 김해수 사무처장은 "대구지역 4개 의과대학에서 의사만 연간 350명가량, 전문의는 240여명이 배출되는데 지역의 전체 개원의원은 2, 3년 전부터 1천600여곳으로 고정된 상태"라며 "원래 있던 곳에서 폐업한 뒤 다른 곳으로 옮겨 2, 3명이 연합해서 개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구가 워낙 포화상태이다 보니 최근 들어 포항, 구미, 울산 등지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적지않다"고 했다.

병원 컨설팅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엔 연령대가 40대 전후반인 내과 및 정형외과 전문의들의 개원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하지만 개원에 드는 비용 부담도 크고, 금융비용과 인건비를 제외하고 순수익을 감안하면 개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해 신규 개원은 거의 중단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환율 변동이 워낙 심하다 보니 고가의 의료장비를 구입한 뒤 리스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캐피털회사들이 리스를 중단했다는 것. 게다가 중소병원의 경우, 부도율이 3~5%에 이를 만큼 높은 상태에서 위험 부담을 안아가며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개인의원에 대한 소액 대출은 비교적 이뤄지고 있지만 병원급에 대한 신규 대출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최근 150여 병상 규모의 모 병원이 개원 6개월 만에 부도가 나면서 이런 부담감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급은 기본 은행권 대출액이 수십억원 단위이기 때문에 파장도 상당히 큰 편이다. 정형외과 전문의 K씨는 "병원 수익이 떨어지면서 개원을 생각하고 있지만 금융비용이나 위험부담을 감안할 때 그마저도 쉽지 않다"며 "결국 2, 3명이 연합해서 개원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통상 한명이 투자액 중 대부분을 부담하다 보니 1, 2년새 깨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개원 의사인 K씨는 "동네 의원의 경우,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 주지 못하는 곳이 최소한 20%는 될 것"이라며 "흔히 밖에서 보기에는 원장이라면 매월 1천만원 정도 버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 정도 수익이면 의원 중에서도 특A급에 속한다"고 말했다. 내과를 기준으로 보면, 매일 환자 50명을 진료해야 손익 분기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소아과나 이비인후과는 이보다 많아야 한다. 통상 병·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지급받는 의료비용과 환자 부담비용을 합쳐서 1인당 1만원으로 본다. 가령 하루에 매일 환자를 100명씩 본다면 한달 수입은 2천500만원. 하지만 각종 은행 이자 및 리스비용, 건물 임대료, 직원 월급 및 운영비를 제외하면 크게 남지 않는다는 것. 물론 환자마다 어떤 진료를 받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수입 산출은 어렵지만, 환자가 넘쳐날 정도가 아니라 큰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뜻.

개원 의사 P씨는 "하루에 환자 100명을 본다면 상당히 잘 되는 의원에 속하는 셈"이라며 "의협 자료를 보면, 개원의 중 약 63%가 근로기준법 기준인 40시간 이상 근무를 하는데도 수입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가 개원의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약 45%(444명)가 한달 평균 순수입(임대료 및 인건비 등 제외)이 500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개원가 의사들은 체감 수입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한다. 한 피부과 개원의는 "아무리 친한 의사들끼리 만나도 수입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입을 다물고 '포커 페이스'가 될 수밖에 없다"며 "가령 1천만원씩 벌어도 500만원 정도 버는 척해야 하고, 200만원밖에 못 벌어도 500만원 이상 버는 척하기 때문에 실제 얼마나 버는지는 자신만 알 뿐 의사들끼리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특히 비급여 진료가 병원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은 경기여파로 환자가 줄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 성형외과 개원의는 "겨울방학이 성형외과 쪽에서는 최대 특수이기 때문에 지금 벌어서 봄, 가을 먹고살아야 하는데 과연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올해를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내과와 산부인과도 수입이 30% 이상 떨어졌다고 하소연한다.

◆중소병원도 도산 위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 병원의 경우,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서 첨단시설을 갖춰 놓고도 개원 1년이 채 못돼 부도가 나거나 화의신청에 들어가는 경우까지 벌어지고 있다. 150억원을 들여 지은 대구 모 병원은 국내 최고 시설을 자랑하며, 서울 강남지역 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법원에 화의신청을 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경매가 진행 중인 병원도 몇곳에 이르고, M&A 전문업체에 매각을 의뢰한 100병상 안팎의 중형 병원들도 적잖은 숫자에 이른다는 소문이 있다"며 "대구의 경우, 60~70개 병원이 있지만 올해를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병원은 20여 개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의사회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중소병원 부도율은 7, 8%였지만 올해 경기침체 영향이 가중되면서 부도율이 10%대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특히 이른바 '빅5'로 불리는 대형종합병원들을 포함한 대형병원들이 지난해만 1만5천병상을 늘리며 경력 간호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간호가 인건비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아울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이후에 요양병원 입원환자 가운데 약 20% 이상이 요양시설로 옮겨가면서 요양병원이 환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 1천700곳 중소병원 중 요양병원은 600곳에 이르며, 이들 중 129곳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경영상 이유 때문에 주인이 바뀌거나 도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병원 관계자는 "대구는 인구 대비 병·의원 숫자가 다른 대도시에 비해 높다 보니 더욱 경영이 어렵다"며 "겉으로 내색은 못하면서 속으로 곪아터지는 병·의원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병원장 L씨는 "병·의원도 과열 경쟁이다 보니 금융 부담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가 의료장비를 들여놓고, 수억원씩 들여서 최고급 인테리어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현재 의료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 없이는 의사들끼리 지나친 경쟁을 벌이다가 결국 공멸하는 길로 치달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 요구하는 보험수가 개선이나 영리법인 도입은 민감한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섣불리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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