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가 도무지 풀리지 않고 있다.
특히 공장을 돌려야하는 산업현장에서는 은행대출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아우성이다. 은행들이 내부유보가 많은 우량기업 위주의 대출관행을 고집하면서 정작 돈이 필요한 기업들은 돈구경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시중자금은 눈치보기가 극심해지면서 머니마켓펀드 등 단기금융상품으로 꼭꼭 숨어들면서 시중 돈가뭄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회의에서 정부가 산업현장에 대한 유동성 공급책을 내놨다.
◆돈구경을 못합니다
일감이 떨어져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벅찬 금속가공업체 대표 A씨는 "주거래은행이 신용등급이 낮다고 대출을 안해준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부터 한달넘게 은행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돈을 구할 수 없다는 것.
A씨는 "조금만 기다리면 곧 주문을 따오는데 몇달을 참아낼 돈이 부족하다. 신용등급이 낮다고 외면하면 몇달내에 근로자 20, 30인 규모 중소기업 3분의1이 쓰러질 것이다"고 했다.
대구시내 한 은행지점장도 "신용등급이 좋은 기업은 투자를 꺼리면서 돈을 안 쓸려고 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업체만 자꾸 돈을 달라고 하는데 이런 업체에는 솔직히 대출을 해주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한국은행 집계결과, 지난달 은행들은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도 불구, 연말을 앞두고 국제결제은행(BIS) 비율과 부채비율 관리를 위해 기업대출을 조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은 2조8천억원, 중소기업은 3조8천억원이 각각 줄어 기업대출은 모두 6조6천억원이 감소했다. 기업대출 잔액이 준 것은 2007년 12월(-4조2천억 원) 이후 1년만이다.
지난해 전체적으로 볼 때 국내 18개 은행의 원화 중소기업 대출은 52조4천억 원 늘어나 2007년 증가규모인 68조2천억 원에 비해 23.2%나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 은행권의 중기대출은 35조원 증가해 월평균 순증규모가 5조8천억원에 이르렀지만 하반기들어 급격히 줄어들면서 월평균 3조원 안팎에 그쳤다.
◆돈은 은행 금고속으로
한국은행과 정부의 각종 유동성 공급 조치로 은행권은 자금이 넘쳐나지만, 은행의 소극적인 자금운용으로 정작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으론 돈이 가지 않고 있다. 정작 필요한 곳에 돈이 가지 않고 돈은 단기금융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MMF설정액은 7일 기준으로 전날보다 1조7천730억원 늘어난 99조9천550억원으로 사상 첫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수탁고가 100조원 이른 것은 지난해 12월24일 90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2주만이다. 자금 유입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추세다.
은행,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주요 수요자인 MMF는 만기가 짧은 국채나 은행채, 양도성예금증서(CD), 기업어음(CP), 정기예금 등에 투자해 얻은 수익을 돌려주는 만기 30일 이내의 초단기금융상품으로, 투자된 자금은 일정한 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대기자금으로 인식된다.
이런 가운데 MMF 수탁고를 폭발적으로 늘린 것은 주로 은행권 자금이라는 것이 업계 설명. BIS 자기자본비율 등 재무구조 개선에 여념이 없는 은행들은 기업대출은 꺼린 채 넘치는 자금을 MMF와 같은 단기금융상품에 넣어두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본격화된 한국은행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하로 경쟁상품인 증권사의 환매조건부채권(RP) 금리가 낮아지면서 MMF로의 자금 유입이 더욱 가속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형증권사들의 RP 금리는 4.5%에서 4%로 낮아진 반면 MMF는 아직 4% 중반에서 5%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은?
정부는 8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은행의 중소기업 지원을 독려할 목적으로 신용보증 비상조치를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키로 결정했다.
경기침체기에 중소기업 대출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신용보증기관의 심사기준을 완화, 중소기업이 쉽게 보증서를 발급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보증한도 산출기준도 중소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선하기로 한 것. 은행이 보증서를 담보로 대출하면 대출자산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낮기 때문에 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에 대한 걱정 없이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또 은행의 중소기업 지원실적을 월별로 점검하는 한편 보증서를 담보로 한 대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확인될 경우 즉시 현장점검을 실시해 조치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는 경기침체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을 통해 중소기업에 모두 50조원 규모의 신규자금을 공급하고 이중 60%를 상반기에 집중 투입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20조원 규모의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은행의 대출여력을 키우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 보증기관을 통한 중기보증을 확대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금융위는 신·기보의 중소기업 보증 규모를 지난해 13조5천억 원에서 올해 25조2천억원으로 확대한다.
보증문턱을 확기적으로 낮추는 비상조치도 올해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지금은 최근 회계연도 매출액이 25% 이상 감소한 기업은 보증서를 발급받을 수 없지만 앞으로 매출액이 40% 이상 감소하지 않은 경우 보증을 받을 수 있게된다.
보증을 받을 수 있는 매출액 대비 차입금 비율도 현행 70% 이하에서 100% 이하로 바뀌며 부채비율이 상한선(도매업 600%, 제조업 550~600%)을 넘거나 2년 연속 매출이 감소한 중소기업도 신보의 판단으로 보증이 이뤄진다.
신보가 보증 한도를 정할 때도 중소기업은 결산이 끝난 회계연도 매출액과 최근 1년간 매출액 가운데 유리한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운전자금에 대한 보증 한도는 현재 1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늘어난다. 보증거절 기업의 재심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본점에 설치된 재심의위원회를 대구경북본부 등 전국 9개 영업본부에도 설치한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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