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 판매에서 시작해 라면까지 끓여내네
이제는 생활 속에서 친숙한 거리 또는 건물 안의 주인 없는 가게인 자동판매기. 산아 제한이 사회적 화두가 됐던 1973년 공공 화장실이나 여관 등 출입구에 있던 콘돔 자판기가 시초라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기능이 향상된 현대적인 자판기의 본격적인 보급은 1977년 롯데산업이 일본 샤프사로부터 도입한 400대의 커피자판기 완제품. 이들 자판기는 당시 서울 지하철1호선에 먼저 배치 됐다.
1978년엔 화신산업이 일본의 벤더사로부터 또 커피자판기 약 500대의 부품을 공급받아 조립 후 다시 일본으로 역수출했다. 이후 자판기사업의 가능성을 타진한 금성사가 일본 후지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자판기사업에 뛰어들었고 삼성전자도 일본 산요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자판기사업을 개시했다. 럭키금성그룹에서는 일본 후지사와 합작해 자판기 전문제조 및 판매회사를 만들었다.
1980년 음료회사인 롯데칠성이 일본 토시바로부터 캔자판기 500대를 도입, 설치한 것은 음료메이커로서 자판기를 자사제품의 판촉장비로 이용한 첫 케이스가 된다. 이를 계기로 80년대 들어 자판기는 전성시대를 구가한다. 단순한 커피자판기에서 벗어나 캔'병'담배 등 자동판매기의 제품들이 보다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81년엔 삼립식품이 우동자판기를 판촉장비로 이용함에 따라 냉'온겸용의 자판기가 등장했다. 이즈음 국내에서는 중요 부품을 수입, 조립한 단계였지만 자판기의 완제품을 생산해냈다. 100% 완전 국산화는 1987년에야 가능했다.
82년과 83년 사이엔 자판기의 판매제품이 더욱 다변화하면서 크기가 대형화되는 등 자판기시장도 크게 확대됐다. 일용잡화와 컵라면, 생리대와 티슈 자판기가 등장했고 음료사가 직판용으로 출시한 500잔용 대형 커피자판기도 나타났다. 84년엔 삼성과 금성이 화폐교환기를 생산, 선보였고 85년엔 삼성이 90잔용 소형 커피자판기를 출시했다. 소형 커피자판기는 이때부터 사무실과 식당 등 일반가게의 고객 접대용으로 팔려나갔다.
그러나 86년은 전반적으로 자판기시장이 출하 부진을 겪으면서 캔'팩'병'드링크 등 다양한 제품들의 겸용자판기가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80년대 말에 이르면 양담배 수입시장이 열리면서 담배자판기가 본격적으로 거리를 점령하면서 담배자판기가 한때 시장의 호조를 누리기도 했다.
90년대에 접어들면 자판기 메이저사의 뒤를 잇는 중소자판기 제조업체들이 특색 있는 자판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90년 금성산전은 자판기를 일본에 수출했고 대우전자'해태전자'광주전자 등이 자판기 개발과 시장에 나선다. 92년에는 무분별한 담배자판기의 남발을 막기 위해 학교 주변 200m이내엔 설치 금지령이 내려졌다. 팝콘과 감자튀김 등 즉석 먹을거리 자판기와 버스토큰용 자판기가 선을 보인 시점도 이때다.
90년대 중반 자판기 생산시장의 판도는 복합형 제품 위주로 가속화된다. 해태전자가 94년 개발한 복합형 중형자판기가 태국에 수출됐으며 연이어 슬러시와 스낵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96년에 이르면 다시 한번 자판기시장의 침체가 나타나지만 각 제조사들은 복합형 자판기를 중심으로 보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자판기 생산에 신경을 쓰게 된다. 결과 97년 '자판기 쇼'가 열렸고 삼성전자의 새로운 형식의 커피자판기, 해태전자의 슬림형 커피자판기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게 됐다.
2000년대에 들면 자판기 제조회사들의 빅뱅이 일어난다. 많은 회사들이 합병 또는 흡수되면서 현재 우리나라 메이저급 자판기 제조업체로는 롯데기공과 (주)로벤이 양대 축을 형성하고 그 뒤를 디케이벤딩사가 선도하고 있으며 몇몇 중소기업이 특화된 이색 자판기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메이저사들은 최대 1천개까지 제품을 진열할 수 있는 대용량 자판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내시장의 우위를 노리고 있다.
휴지나 콘돔판매 및 가게용 소형 자판기를 뺀 현재 우리나라 자판기 보급대수는 약 25만대로 추산되고 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