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재창조] 역사·테마가 있는 공원 만들자 (상)달성공원
달구벌을 지켜온 천혜의 요새. 자연스럽게 생긴 구릉을 이용해 쌓은 대구 최초의 토성을 입고 있는 곳. 삼한시대 이후 대구의 중심세력들이 자신들의 생활공간으로 축조한 성곽이 공원으로 변신한 곳. 바로 달성공원이다.
1970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꽃사슴 다섯 마리를 기증하면서 대구에서 처음으로 동물원이 지어진 달성공원은 대구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공원 앞에 삼삼오오 서 있던 노점상의 노란 냉차를 마셔보지 않은 아이들이 없을 테고, 점을 봐준다며 얼굴의 점까지 빼주던 점집 아저씨에게 사주팔자 맞춰보지 않은 이가 없으리라.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고함을 지르던 약장수 구경꾼 틈에서 뱀을 구경하고, "자, 자, 맞춰봐, 맞춰봐." 야바위꾼의 현란한 손놀림에 주머니 몽땅 털린 어른들의 기억도 손에 쥘 듯 생생하다.
하지만 현재 달성공원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축 처진 어깨를 끌고 찾는 그들만의 놀이터이자, 구경꾼이 없어 힘이 빠진 동물들이 엎드려 졸고 있는 나른한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달성공원은 현안인 토성 복원과 동물원 이전만으로도 도심재창조의 큰 동력이 될 수 있다.
◆힘 받은 토성 복원
지난 5일 대구시는 달성토성 복원을 중심으로 한 도심문화 관광기반 조성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성곽발달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이 옛 모습 그대로의 살결을 보여주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대구시 문화관광과 이진현 담당자는 "그동안 달성토성에 대한 정확한 현황이나 자료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국·시비 1억 원을 투입해 오는 3월부터 달성토성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벌이고, 흩어져 있던 각종 문헌자료를 한데 모아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토성 복원 프로젝트를 기획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성복원은 2013년까지 추진된다.
하지만 토성 복원만으로 달성공원 전체를 살릴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달성이 대구를 대표하는 공간임에도 역사적 배경이나 가치에 대한 인식과 홍보가 부족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 토성에 걸쳐 자리한 향토역사관 문제, 경상감영공원의 정문인 관풍루의 제 위치로의 이전 문제, 달성의 담장 철거문제도 거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대구대 건축공학과 예명해 교수는 "대구의 발상지이자 풍수적으로 명당인 연꽃 모양의 달성을 국사 교과서에 실어 그 신성함과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며 "정밀지표조사도 단기간에 그치지 말고 달성 인근에 점점이 흩어진 문화재들끼리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까지 전체적인 틀을 놓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달성공원이 가진 역사성에 대구만의 독특한 테마를 더해 대구시민은 물론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 1번지'로 만드는 방안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달성공원은 도심에 사람을 끌 수 있는 도심재창조의 출발점이자 끝이 될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 때문에 달성공원 전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짜고 힘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역사적 가치와 별도로 체험 공간이나 수변 공간 등 발칙하고 신선한 테마가 첨가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모으는 것도 필수"라고 말했다.
◆동물원 이전, 힘있게 추진해야
대구시의 달성공원 역사테마공원화 전략사업의 가장 큰 핵심은 동물원 이전이다. 달성공원이 사적지라기보다 일반 근린공원으로 취급받는 것도 동물원이 한몫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름이면 동물원의 악취로 시민 민원이 극에 달하는 것.
예명해 교수는 "지난해 조사에서 동물원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더 많았지만 이는 달성 내에 볼거리나 놀이시설이 부족하고 역사적 인식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동물원의 시설 투자 미흡으로 인한 관람 가치 하락이 쾌적한 주변 환경 조성을 크게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시는 동물원 이전이 달성공원 재생의 전제조건임을 내세우면서도 예산타령만 하며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는 지난해 10월 달성공원 동물원을 수성구 삼덕·연호동 일대 구름골(68만5천㎡)에 이전시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호랑이와 사자가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을 자동차를 탄 채 구경하고 먹이도 줄 수 있는 '사파리 공원' 형태로 예산 1천800여억원을 확보해 2012년까지 문을 연다는 것. 달성공원 동물원의 호랑이, 사자, 코끼리 등 80종 360여마리가 옮겨가고 새로운 종이 추가될 계획이었지만 이 계획은 답보상태다.
대구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대구대공원 일대 일부에 동물원 시설 결정은 되어 있지만 2천억원에 가까운 예산확보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민자 유치를 기대하고 있지만 당장 나서는 이도 없고 협상 중인 대상도 없다"고 말했다.
◆달성공원의 가능성을 엿보다
이번에 국책사업이 된 달성토성 복원 사업에는 자연, 역사, 문화가 버무려진 천혜의 공간으로 변모할 거대 청사진이 제시돼 있다.
동물원 이전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토성길 정비, 대구사 벽면전시, 식생정비를 통한 '토성 정비'가 대대적으로 이뤄진다. 야외공연장 조성이나 향토역사관 리모델링 등 문화예술 공간으로의 변신도 꾀하고 있다. 또 서기 26년부터 시작하는 시대별 이야기가 프로그램으로 재현되고 생태연못, 가족 피크닉장도 생길 계획이다. 공원 앞을 지나는 달서천이 복원될 경우 삭막한 이곳에 수(水)공간이나 생태공간도 생긴다. 불과 몇백m 떨어진 KT&G 연초제조창이 문화창조발전소로 바뀌게 되면 거대한 '문화역사 탐방로'가 펼쳐지는 것이다.
한 시민은 "예전 달성공원 정문을 지키고 있던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나, 물이 부족한 곳에 물과 함께 잉어가 튀어올랐다는 '잉어샘' 이야기, 효성이 지극한 한 아들의 '미꾸라지 찾기' 이야기 등도 공원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는 공원으로 변모한다면 시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성지구 재개발추진위원회 이문형 위원장은 "지난해 주민들과 중구청이 노력해 달성동 문화재 주변지역 고도제한 규제가 건물 최고 높이 20m 이하에서 최고 62m로 풀렸지만 경기침체로 개발 기대감이 공허함으로 바뀌었다"며 "하지만 달성공원이 바뀌고 낙후된 주거환경이 개선된다면 주민 모두가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