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의 家電(가전) 혁명은 의식주 전반에 걸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왔다. 그바람에 우리네 일상에서 빠르게 사라져간 것들도 많다. 빗자루도 그중 하나다. 지난날엔 청소를 할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빗자루였다. 방 빗자루로는 소금물에 삶아 말린 갈대빗자루가 제격이었고, 부엌바닥은 수수빗자루, 마당은 대나무나 싸리빗자루 등이 주로 사용됐다.
이중에서도 특히 싸리빗자루의 재료인 싸리나무는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싸리나무는 전국 어느 산에서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종류다. 꿀을 담뿍 담은 홍자색 꽃과 동글동글한 이파리도 예쁜데다 쓰임새 또한 다채로웠다. 땔감으로는 물론 싸리나무로 엮은 사립문에다 싸리 울타리, 싸리 발에 싸리 소쿠리, 매서운 싸리 회초리까지 싸리나무로 만든 것들이 흔했다. 싸리비로 마당을 쓸면 빗자루에 힘이 있어 정갈하게 잘 쓸렸다. 빗자루질을 할 때 싸아, 싸아, 하는 특유의 소리는 정겨움을 자아내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싸락눈 내린 뒤 눈을 치우는데는 싸리비만한 게 없었다. 말썽꾸러기 자식 때문에 부아가 터진 엄마들이 싸리 빗자루를 치켜 들고 뒤쫓아가는 모습도 추억 속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빗자루의 등장으로 자연산 토종 빗자루들이 자취를 감춘 지도 오래다. 아파트 주거의 대중화와 자동청소기의 생활필수품화로 일반 가정에서 빗자루는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시골 장터 같은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일상에서 멀어졌다.
때아니게 싸리비가 청와대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봉화의 싸리비란다. 봉화군 새마을회 회원들은 10여년 전부터 해마다 11월에 인근 깊은 산에 올라가 싸리나무를 베어 말린 뒤 이를 가지런히 묶어 2, 3천 자루의 싸리비를 만들어 연말이면 전국 여러 관공서 등지에 나눠주고 있다한다. 소문을 들은 청와대 측이 싸리비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해와 며칠전 300자루를 보냈다고 한다. 청와대는 그간 대빗자루나 플라스틱 빗자루로 눈을 치웠는데 제설효과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해 싸리비를 구하려 수소문해 왔다는 것이다. 당초 600자루를 요청했지만 뒤늦게 연락이 와 절반밖에 보내지 못했다니 봉화 싸리비의 명성이 대단한 모양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한 상징이기도한 싸리비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현실이 재미있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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