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정부와 MB(이명박) 정부의 평가는?
-노무현 전 정부 5년과 이명박 정부 1년을 평가하면?
"노무현 전 정부는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로부터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에 투항했다'하고 보수진영은 '좌파다, 분배주의자다'라고 폄하하고 있지만 둘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중도노선을 걸으려고 한 정부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60년 역사상 최초로 중도노선을 견지했던 정부다. 좌·우로부터 늘 공격받는 것이 중도의 운명이다. 시간이 지나면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다.
MB정부는 출범한 지 1년밖에 안 지났지만 대체로 윤곽이 드러났다고 본다. 출발 자체가 '잃어버린 10년'이란 말로 전 정부를 비판하면서 재미를 본 만큼 감세정책과 작은 정부, 좌파정책 척결 등으로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제도와 정책은 연속성이 중요한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잃어버린 10년'이란 흥행을 중단하고 인사와 정책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실패하고 이전 정권보다 더욱 욕을 먹으면서 초라하게 퇴장할 것이다."
-MB정부가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면 그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렇다. 실패원인은 대통령의 철학에 있다. 감세, 작은 정부, 신기업 육성, 전봇대 뽑기로 대변되는 시장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시장주의 정책 때문에 작금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다. 왜 실패한 길을 가려고 하는가. 시장주의를 버려할 때가 왔다. 4대 강 정비사업이 대표적이다. 대운하가 아니라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라서 운하 운운하는 자체가 개발주의로 되돌아가겠다는 생각이다. 수명 다한 구식의 개발주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방송법 개악, 공기업 인사, 예산 편성 등에서 노골적으로 부자(강자) 편들기, 약자 짓밟기를 하고 있다. 또 대북관계만큼은 기업인 출신이라서 이념을 떠나서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으로 기대했다. 개성공단, 금강산 개발을 확대하고 미개척 분야를 개발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 남북관계는 경색을 넘어 회복불능 상태가 됐다. 이러한 실패 책임은 오로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잘못된 철학을 갖고 있고 측근들은 눈치만 보고 있고, 결국 식물정권이 되어가고 있다. 실패의 원인은 대통령이 미래를 위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 못하고 큰 그림을 보여주지 못한 데 있다."
-노무현 정부는 실패했나, 성공했나?
"어느 역대 정부보다 공(功)이 과(過)보다 많다. 그 공의 반 이상은 인기는 없었으나 장점이 많았던 바로 노 전 대통령 몫이다. 노 전 대통령의 공은 학자를 등용, 아이디어를 모으고 정책은 공직자들에게 추진토록 한 2원적 정책추진에 따른 것이다. 학자군주인 세종대왕이나 정조 임금과 비교할 수는 없으니 '학자군주적 면모'를 보여준 것 같다."
-2008년 일어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광우병 파동이다. 직접 촛불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실제 참가해 보니 촛불집회의 열기와 위력은 대단했다. 광우병 파동은 대통령과 측근들의 조급성 때문에 발생했다. 미국 방문길에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이 나락으로 떨어진 계기가 됐다. 발생 후에도 안이한 대처로 일을 커지게 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을 경우 앞으로 국정운영에 큰 교훈이 될 것이다. 국민은 안중에 없는 MB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국민의 무서움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국가적 SOC사업, 4대 강 정비계획 발표로 경제살리기에 나서고 있는데 도움이 될까?
"일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건설과 토목은 마약과 같다. 당장은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지만 장기적이지 못하다. 일본의 악영향으로 토건국가화 됐다. 특히 한국은 국민소득 중 건설·토목분야 차지비율이 18%로 10~12% 수준인 선진국에 비해 아주 비대하다. 투자효율이 더 높은 미래성장산업 쪽으로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부실한 건설회사는 구조조정하고 희망있는 업종으로 유도해야 한다."
-MB정부를 '지우개 정부, 거꾸로 정부'라고 평가했는데?
"전 정부의 정책에 반해 무엇이든지 거꾸로 가려고 한다. MB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진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지난 대선 때 압승한 경험 때문에 지난 정부의 모든 정책을 지우고 거꾸로 가면 승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아집에 빠져 있다. 오히려 전 정부의 잘한 정책과 장점은 계승하겠다는 자세로 통큰 리더십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은?
-정부수립 60년간 대한민국이 성취한 것과 성취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는 경제성장과 민주화에서 2차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나라로 한국을 꼽았다. 그동안 건국, 공업화(그는 농업에서 공업쪽으로 발전한 만큼 산업화는 적절한 용어가 아니라 강조했다), 민주화라는 세가지 측면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그러나 민주화 수준은 초보단계이고 건국과정에서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정통성을 상실했고 썩은 주춧돌을 놓은 셈이었다. 진정한 민주화 없이는 진정한 경제발전도 없다."
-일각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가 근대화에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는데?
"(이 교수는 이런 주장을 비판한 한 책에 자신이 써 준 서평을 소개하며)이는 일본 극우파 쪽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식민지와 독재도 좋고 성장만 하면 된다는 논리는 '우리가 뭣 때문에 사는가'하는 의문과 충돌될 수도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MB정부의 경제성장률은 어느 정도될까?
"참여정부 시절 평균 4.3%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당분간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4∼5%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경제가 진정이 되면 그 정도 수준은 이룰 것으로 본다. 그러나 현재의 감세 정책이나 작은 정부 주장은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싶다. 세계적으로 감세와 작은 정부로 성장을 이룬 예가 없다.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를 성공 사례로 인용하지만 실제 성장률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MB정부는 종부세 완화 등 중산층을 외면한 부자 감세정책만 열심히 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지방이 살 길은?
-MB정부 들어 수도권 규제완화 추진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데?
"역대 정부치고 참여정부처럼 지방을 생각한 정부는 없었다. 균형발전을 위해 공기업 이전 등 많은 정책들을 내놓았고 심지어 지나친 지방우선 정책으로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했다. 인재등용 역시 지방쪽을 배려했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하루아침에 폐기됐다. 현 정부는 수도권 규제만 풀면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다."
-어려운 지방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떠게 해야 하나?
"법인세 감면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지방에 투자할 만한 매력을 파격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또 지방인재를 위한 등용 폭을 넓혀야 한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47%인 나라는 세계에서 유래가 드물다. 분산 정책을 펴야 하지만 현정부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에 대한 애정이 없다."
-지역에서 대학교수로 있는데 지방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하나?
"지방대학 교수라는 말이 외국에서는 없다. 유명 대학들이 지방에 소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 대학들이 수도권에 있을 이유가 없다. 전국의 지방에 서울대 수준의 10~20개 국립대학을 육성하고 지원하고 명문사립대 10~20개를 만들면 학생들은 입시전쟁에서 해방된다. 이들 대학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교육정책을 얘기할 때 '소수 정예주의' '한 명이 천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상한 철학이 자주 등장한다. 패망으로 가는 위험한 철학이다. '경쟁과 협조' '성장과 평등' 모두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발전한다."
●분배위주의 경제정책 주장으로 좌파로 몰리고 있는데?
"하도 분배를 무시하기에 분배도 중요하다 했더니 좌파다, 분배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미국 유학 당시 소득분배론과 경제발전론을 전공했다. 현재 한국경제의 문제인 저성장(경제발전)과 양극화(소득분배)임을 생각할 때 운좋게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학문을 미리 공부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장 쪽을 중시했다. 우리나라의 예산구조를 보면 드러난다. 지금껏 경제예산이 복지예산보다 많았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반영한 예산이다. 참여정부 말기에 겨우 28(복지)대 25(경제) 정도로 역전시켰다. OECD 국가 경우 평균 55대 10 정도로 복지예산이 많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재역전을 노리고 있다. 기형적인 옛날 구조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복지확대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성장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대담·정인열 편집부국장
정리·최창희기자
▨ 이정우 경북대 교수=1950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美)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부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 정책실장과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참여정부의 동반성장론을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특히 2003년 10·29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만들면서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을 주도했다. 또 인위적 경기부양 반대, 성장·분배 동반추구를 주장하며 참여정부 초기 경제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006년 말 정책특보직에서 물러나면서 참여정부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등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으나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경제정책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까지 한국미래발전연구원과 대구의 진보적 지식그룹인 대구사회연구소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삼성 등 재벌 구조와 한·미 FTA 추진을 비판하는 등 우리나라 진보 경제학을 대표하고 있다. 저서로 '소득분배론' '시장경제질서와 노사관계의 발전방향' '한국사회문제'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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