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진행하는 앵커들이 방송을 시작할 때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하며 시청자나 청취자들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어제 뉴스 때도 물었는데 오늘 뉴스를 시작하며 또 묻고 정오 뉴스 진행자도 물었는데 저녁 뉴스 진행자도 묻는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것은 그만큼 의외성과 돌발성이 많다는 것의 방증일 수도 있다. 어제까지는 분명히 안녕했지만 오늘은 안녕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오 뉴스 때까지는 멀쩡했지만 저녁 뉴스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응급수술을 많이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앵커들의 인사가 절대 '빈 말'이 아니다. 예약이 없던 상태에서 병원으로 실려오는 사람의 대부분이 조금 전까지는 멀쩡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은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평범하게 보내는 보통의 나날, 즉 日常(일상)이 바로 행복한 순간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어제는 일상이었던 것이 오늘은 일상이 아닐 수도 있으며 조금 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이 조금 후에는 더없이 간절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일상'이 너무나 빨리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연세가 많이 드신 분께는 죄송스런 표현이지만 요즘은 필자도 세월이 너무 속절없게 느껴진다. 20대는 시속 20㎞의 속도로 세월이 지나가고 30대는 30㎞, 50대는 50㎞의 속도로 지나간다는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유수같이 흘러가거나 쏜살같이 날아가는 세월을 '매듭'지어 시간이라는 것을 만든 인류의 조상들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매듭 없이 세월이 마냥 흘러가면 '건강하게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해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토막 내 해가 중천에 가장 높이 떴다가 다음날 그 자리에 오는 시간까지를 하루, 보름달이 뜨는 날부터 다음 보름까지를 한 달로 잡아 달력을 처음 만든 사람은 고대 이집트인들이었으며 여기에 다시 윤년을 만들어 1년을 365일로 만든 것은 줄리어스 시저 시절의 로마 사람들이었고 현재와 똑같은 달력이 만들어진 것은 그레고리 13세가 로마교황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던 1582년이다.
달력의 역사가 어떠하든, 세월을 매듭지어 하루, 한 달, 한 해를 만든 옛사람들의 지혜는 예사롭지 않다. 만약에 세월의 매듭이 없었다면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운 줄도 몰랐을 것이고 하루에 세 번 반성한다는 一日三省(일일삼성)이니, 한 해를 돌이켜 반성하고 새해에 새로운 결심을 세우는 작심 따위가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인류문명의 발전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매듭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대나무가 바로 그것이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 있어 연약할 것 같지만 바람에 흔들릴 뿐 절대로 꺾이지는 않는 강인함을 지니고 있다. 연약할 것 같은 대나무가 버틸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대나무의 매듭인 마디에 있다. 대나무는 바람을 받을 때 전체가 아니라 마디마디로 나눠 받는다. 그래서 웬만큼 강한 바람도 대나무의 뿌리를 뽑거나 허리를 분지를 수 없다.
필자는 사람의 경우, 세월의 매듭을 지을 때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한다. 막말로 몸뚱이 하나가 밑천인 것이 보통사람들의 삶인데 그것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잘못되는 것이다. 몸 하나가 밑천인 사람들은 웬만큼 아파도 일손을 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미리미리 건강을 보살펴야 하고 그것이 일상의 행복을 오래오래 지속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는 옛말이나 "천하를 얻고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성경말씀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건강을 잃으면 미래는커녕 내일조차 없을 수도 있다.
이제 2008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대나무가 매듭짓기를 통해 더욱 강해지고 사철 푸른 기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한 해의 매듭을 잘 지어야 새해를 더 희망차게 맞이할 수 있다. 올해도 건강 매듭을 잘 짓고 내년에는 더욱 더 건강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우상현 수부외과세부 전문의/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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