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물건을 많이 살 수 있어 좋고, 똑같은 돈을 가졌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의 종류가 많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고르기가 용이해 더더욱 좋다.
이것은 비단 경제활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야구경기에서 투수는 직구만 던지는 것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변화구를 구사하는 것이 타자를 공략하기에 쉬울 것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 역시 매우 간단하다. 무언가가 늘어난 경우에도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여전히 예전과 똑같은 선택을 할 수가 있다. 따라서 무언가가 늘어난 경우의 선택이 오히려 기존 선택보다 안 좋다면 그냥 기존 선택을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 때가 있다. 반대로 선택의 폭이 작은 것이 오히려 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전투를 치르기 위해 진(陳)을 치는 방법을 진법(陳法)이라고 한다. 진을 칠 때는 지형이나 아군, 적군의 규모 등을 고려해 공격과 방어가 쉽고 유사시 퇴각이 용이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진법 중에 배수진(背水陣)이라는 것이 있다. 잘 알다시피 이 진법은 강이나 바다 등 물을 등지고 군사를 배치하는 방법을 말한다. 아군의 규모가 적군에 비해 크게 열세일 경우, 아군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갈 궁리를 하기 십상인데 이때 배수진을 치게 되면 후퇴할 길이 없어지게 되고 군사들은 살기 위해 전투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 더욱 열심히 싸우게 되는 것이다. 또 이런 배수진의 사실을 예측하는 적은 섣불리 공격을 못하게 된다. 즉, 배수진을 쳐서 후퇴라는 선택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기업의 전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명품 상표인 '루이비통'과 '샤넬'은 무재고(無在庫) 전략으로 유명하다. 이들 회사는 이월상품이 생기면 재고로 쌓아두지 않고 폐기처분을 하는가 하면 심지어 공개적으로 재고품을 소각하기도 한다. 이는 이월상품의 할인판매를 바라는 소비자의 기대를 무너뜨려 소비자들로 하여금 이들 상표를 언제나 제값 주고 구입하도록 할 뿐 아니라, 이들 상표의 명품 이미지를 유지시켜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물론, 이월상품을 소각하지 않고 재고로 쌓아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위와 같은 가격전략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재고품이 있고 재고품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업은 아무래도 재고품을 팔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가령 불경기로 매출이 크게 떨어지면 이들 기업은 재고품을 할인판매할 유혹을 느끼게 되고 실제로 할인판매를 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같은 행위가 반복되면 소비자들이 신상품이 나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할인판매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제값 주고 사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무재고 전략은 이러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켜 회사에 득이 될 수 있다.
결국 많을수록 좋다는 자명한 원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전략적으로 선택의 폭을 줄이는 것이 상대의 태도에 영향을 미쳐 자신에게 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선택의 폭을 확실히 줄이는 한편 상대가 그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정상만(대구은행 황금PB센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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