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소아마비 앓는 손녀 돌봐주시던 할머니

입력 2008-12-27 06:00:00

내가 어릴 적 약 60여 년 전에는 한 해의 마지막 가는 날인 섣달 그믐날에는 이웃 간 서로 빌려 가고 빌려 온 물건들(금전도 포함)을 다같이 가져다 주고 가져오곤 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도 한 해 동안 같은 동네에 살면서 빌린 것은 갖다 주고 빌려 준 것은 찾아와서 집 나갔던 각종 농기구들이 모두 제자리에 돌아왔고 가게의 외상값도 하나 없이 다 갚았다.

그 당시 내게는 나를 많이 사랑해주는 할머니가 계셨다. 내가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을 못 쓰는 지체장애아이였기에 할머니가 내게 주시는 사랑은 어쩜 연민의 정이었는지 모른다. 친구 없는 나에게 할머니는 친구였고 말벗이었다. 늘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아이들 세계에서보다 어른들 세계에서 더 많이 살아서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운 애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 내가 본 할머니는 참 대단했다. 모르는 것이 없었고 작은 손 금고 안에는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돈들이 나왔다. 아버지도 돈 쓸 일이 있으면 할머니께 타다 쓰는 걸 본 나는 이 금고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금고 안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 있을 것을 상상한 나는 금고를 이야기 속 요술방망이처럼 생각했었다. 나중 안 일이지만 그 금고 속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가 수시로 벌어오면 할머니가 받아서 금고에 넣어 두고 관리를 하신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할머니는 새해가 다가오는 전날 밤이면 재래식 부엌의 가마솥에 물을 끓여 우리들을 목욕시키고 새로 지은 옷을 챙겨 머리맡에 놓아두곤 "오늘 저녁에는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며 등불을 켜서 마루와 집안 구석구석에 내 걸고 밤을 새우라고 했는데, 이것을 해 지킴이, 수세(守歲)라고 했다. 당시는 기름을 배급 타다 쓸 정도로 귀했는데 그날은 기름 아까운 줄 모르고 밤새도록 불을 켜두시며 새해를 맞으셨다. 그렇게 밝은 밤은 새해를 앞둔 밤뿐이었다. 아마도 묵은해의 상처를 보내고 새해의 희망을 받아들이라는 소망의 등불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눈썹이 하얘질까 봐 자꾸 눈썹을 매만져보면서 잠을 쫓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목욕까지 마쳐 노곤한 몸이라 밀려드는 잠을 물리칠 수가 없어 어느새 꿈나라로 가고 말았다.

아무튼 할머니는 우리 집의 대변인 또는 만능해결사 노릇을 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같이 살다가도 섣달 그믐이란 말을 듣고 예전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고 떠나셨다. 오늘은 유난히 할머니가 그리워 할머니를 불러본다.

김수복(경산시 중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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