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손 잡은 이도 많았습니다…불우이웃 돕는 성탄절

입력 2008-12-27 06:00:00

지난 20일 대구 시내의 한 레스토랑. 아담한 장식의 실내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조그만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한 전구도 번쩍였다. 불경기 탓에 올해엔 특히 흥겨운 분위기를 느끼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성탄절·연말연시가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물들이다. 이곳에는 특별한 상징물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장난감 상자'였다. 영어로 '토이 박스'(Toy Box). 상자에는 낡은 장난감들이 담겼다. 크든 작든 모양이 예쁘든 그렇지 않든 상관은 없었다. 따뜻한 사랑과 정성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뜻깊은 X-mas 기획으로 출발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 당일까지 각자 장난감을 가져와 이 상자에 넣었다. 캔 음식이나 라면 등 상하지 않는 음식도 괜찮았다.

행사 주최 측은 장난감 상자에 선물을 넣은 이들에게 '에그노그'(eggnog: 우유·달걀에 브랜디·럼주를 섞은 칵테일 음료. 크리스마스 특별주) 한 잔을 무료로 줬다.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행사 주최 측은 모인 선물들을 정성 들여 포장했다. 사람들의 자그마한 정성이 가 닿은 곳은 경북 영천의 한 보육원. 주최 측은 선물꾸러미 한 보따리를 들고 성탄절 다음날 이곳 아이들을 찾았다. 색다른 선물에 받는 사람도 주는 이도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장난감 상자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좀더 의미 있게 보내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레스토랑 하미마미의 주인인 하미영(27·여)씨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추진하다가 홍보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그때 한 친구가 '장난감 상자'를 설치하자고 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제안한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 스콧 퓨전(27)씨.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그는 현재 경북여고에 원어민 교사로 재직 중이다.

애초에 퓨전씨는 보육원 아이들을 초청해 크리스마스 만찬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하씨는 이를 만류했다. 보육원 아이들로서는 1년 중에 가장 바쁜 날이 크리스마스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씨는 "퓨전씨가 '크리스마스 때에는 당연히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너무 당연하게 해서 놀라웠다. 그만큼 평소에 남을 돕는 것이 습관화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행사들이 많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퓨전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행사를 특별하게 치르고 지역사회를 돕자는 생각에서 제안했다"며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이런 행사를 통해서 한국인과 만나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성탄절은 불우이웃과 함께

우리에겐 조금 낯선 풍습이지만 자선 행사를 하면서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보내는 것은 서양에서 보편적인 모습이다. 장난감 상자처럼 선물을 수집하는 것으로 '홀리데이 기프트 박스'(Holiday Gift Box)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빙 트리'(Giving Tree)라는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선물 주머니를 설치해놓고 선물을 넣게 하는 방식이다. 호주인 리아 브로드비(27·여)씨는 레스토랑 하미마미 측에서 보낸 자선 행사 안내 e메일을 읽고 기빙 트리를 떠올렸다. 그래서 자신이 갖고 있던 인형 중에 하나를 골라 장난감 상자에 넣었다.

퓨전씨는 미국에서 성탄절이 되면 가족들과 음식을 준비해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준 경험을 들려줬다. 자신 말고도 많은 이들이 성탄절에 노숙자 쉼터(shelter)에 가서 따끈한 수프를 끓여 나눠주는 '수프 키친'(Soup Kitchen) 활동을 벌인단다.

차가운 겨울날 이웃을 돕는 정겨운 풍습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길거리 구세군 냄비에도 사랑의 손길이 끊이지 않고 각종 성금 모금에도 참여객이 줄을 잇는다. 경기 불황 탓에 남 돕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도 자비심은 넘쳐난다. 현금이 넉넉지 않게 되자 연탄이나 쌀, 농산물, 무료 수강증 등 소액의 현물로라도 온정을 이어가고 있다. 한겨울 불우이웃 돕기에는 이미 동·서양이 따로 없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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