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京올림픽 핸드볼 3.4위전 때/종료직전 왕언니들 멋진 마무리
한겨울에 꽃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는 오래전 어느 시에 "저런 꽃이 활짝 피어나는 순간을 본 적이 없다"고 썼다. 그렇지만 오늘날은 고도로 발달한 촬영기술 덕분에 그 '비밀'을 쉽사리 훔쳐본다. TV를 통해 느린 화면으로 가끔 볼 수 있는 꽃피는 장면, 그 '식물의 동작'은 신비롭기만 하다. 그것은 한 생명의 꼭대기에서 일어나는 찰나의 폭발 같은 것. 정진규 시인은 바로 그것을 "절정에서는 금방일 저쪽이 환하다"고 간파했던 것일까. 개화, 그 절정은 분명 환한 아름다움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흔하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함부로 쓰지는 않는다. 웬만하면 그저 '예쁘다' '곱다' 정도의 찬사로 족하다.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그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은연중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야말로 구원이요, 그래서 저쪽의 큰 기쁨인 것이다.
매년 연말은 '다사다난'이라는 말에 붙들린다. 예외가 없다. 올해는 특히 온 나라가 경제적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현재의 사정으로는 '가망 없는 새해'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12월이 될 듯싶다. 이처럼 암울한 판에 홀연히 한 '아름다움'이 나타났다. 김연아였다. 세계 피겨스케이팅의 요정으로 불리는 김연아 선수. 얼마 전 홈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첫날 경기에서 보여준 연기는 그야말로 '꽃피는 동작'이었다. 정적 한복판을 흐르는 새, 그 율동은 전문가의 해설이 성가실 정도로 보는 이들의 숨을 멎게 했다. 바닥과 공중을 넘나들며 그려내는 그 격렬하고도 고요한 '몸의 문법'을 보면서 "아름답다"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2008년 한 해는 스포츠가 대국민 효자노릇을 많이 한 것 같다. 그 무엇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했던가. 달리 떠오르는 '거국적 경사'가 없었다. 지난여름 중국의 베이징에서 열렸던 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가 7위를 차지했다. 국민들이 환호한 그 성적도 성적이지만 올림픽 기간에 보여준 선수들의 빛나는 투혼과 그에 따른 감동 드라마 또한 오래 기억될 만한 아름다운 장면들이었다. 수영의 박태환, '국민남동생' 배드민턴의 이용대 선수의 그 '윙크', 세계신기록 3개를 들어올린 역도 장미란의 '아름다운 몸매'가 떠오른다. 특히 반전에 반전, 9전 전승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낸 야구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때 이승엽이 보여준 겸양과 희생의 여러 미덕은 그가 날린 적시타, 홈런 두 방과 함께 한국 야구의 아름다운 전설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정작 참으로 진한 감동은 금메달이 아니라 동메달에서 나왔다고 우기고 싶다.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은 여자의 경우 특히 선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 나간 선수들조차 30대 초중반의 주부가 많았다. 그래서 '아줌마 부대'로 통하는 이들에겐 베이징올림픽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노르웨이와의 준결승에서 오심판정의 희생양이 된 한국 팀은 마지막 경기로 헝가리와의 3, 4위전을 치르고 있었다. 경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국은 33대 28, 5점 차로 크게 앞서고 있었다. 승부가 사실상 결정난 상황, 경기종료 1분 전이었다. 이때 임영철 감독이 느닷없이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이것은 관례상 지고 있는 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아는 임 감독은 그러나 그럴만한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곧장 '대규모 선수교체'를 단행했다. 나이가 많은 고참 선수 다섯명 모두를 코트로 들여보낸 것. "마지막을 너희가 장식해라." 일생 다시는 뛰어보지 못할 올림픽 경기장.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감독이 선물로 준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왕언니 선수'들은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선물, '아름다운 1분'이었다.
새해에는 좀 더 가까이 서로에게 다가가볼 일이다. 정겨운 눈빛,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격려가 되고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저쪽에서 오는 아름다움이요, 이쪽에 나타나는 광명인 것이다.
문인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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