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참 아름다운 전통

입력 2008-12-26 10:59:09

심각한 불황이 지구촌을 휩쓰는 가운데 올 크리스마스에도 미국에선 '비밀 산타'(secret santa)들의 활동이 눈부셨던 모양이다. 원조격인 래리 스튜어트가 지난해 타계한 뒤에도 그의 유지를 잇는 2세대 비밀 산타들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100달러 지폐를 나눠주는 전통을 잇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80년대 초반부터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자 등에게 10달러 지폐를 전해주는 일명 'LA 산타'도 처음 시작했던 로버트 모란이 1992년 사망한 뒤 그의 친구들이 선행의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동화 속 산타클로스가 아닌, 살아있는 진짜 산타인 그들의 이웃 사랑은 마음이 사막처럼 버석거리는 이 세대에 시원한 샘물이 솟아나는 오아시스처럼 감동을 안겨준다.

1세대 비밀 산타들은 생전에 익명으로 활동하다 죽기 전후 신원이 밝혀졌다. 그들의 남다른 활동 뒤엔 감동 어린 사연들이 있다. 스튜어트의 경우 1971년 다니던 회사가 망하자 이틀간 굶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너무도 배가 고팠던 그는 땡전 한 푼 없이 한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한 후 지갑을 잃어버린 척했다. 그때 식당주인이 바닥에서 20달러를 주운 척하며 "이 사람아, 돈을 떨어뜨린 것 같네"라며 그를 곤경에서 구해주었다. 그때 스튜어트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되면 돕겠습니다"고 하느님에게 맹세했다 한다. 훗날 백만장자가 된 그의 선행은 1979년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시작됐다. 물론 선한 사마리아인 같던 그 식당 주인을 찾아가 1천 달러 봉투로 보은도 했다.

지금 그 전통을 잇고 있는 2세대 비밀 산타들 또한 그 스승에 그 제자들답다. 철저히 신분을 숨긴 채 때로는 선글라스'스카프 등으로 위장까지 하면서 삶에 지친 사람들 앞에 바람처럼 나타나 돈을 주고는 바람처럼 사라진다고 한다. "다른 이에게도 좋은 일을 하면 된다"는 말만 남기고.

자신과 가족의 행복 외엔 무관심한 현대 사회에서 조건 없는 나눔이란 보통 마음으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스튜어트를 따르는 비밀 산타들은 여전히 '래리 스튜어트, 비밀 산타'라는 스탬프가 찍힌 지폐를 나눠준다. 자신을 숨긴 채 자기 주머니를 털어 29년간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는 그들을 보며 언젠간 우리 사회에도 이런 비밀 산타가 나타나면 얼마나 멋질까, 그런 공상을 해본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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