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나누는 사람들]구세군 자선냄비

입력 2008-12-25 06:00:00

'언제 크리스마스가 왔다는 것을 느끼세요?' 이 물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리를 수놓는 트리를 보거나 캐럴을 들을 때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전령사는 구세군 자선냄비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나눔의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선교 100주년을 맞은 구세군의 자선냄비 유래와 의미 등에 대해 알아본다.

구세군은 1865년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런던 슬럼가에서 '기독교 선교회(The Christian Mission)'라는 명칭으로 창립했다. 부스는 가난한 사람들과 근로자들이 교회로부터 배척되던 시절,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교회를 만들려고 했다. 그는 1878년 '기독교 선교회'를 구세군으로 개칭했으며 조직을 군대식으로 구성했다.

본부는 런던에 있으며 각 나라마다 구세군을 대표하는 사령관이 있다. 사령관 밑에는 사령관을 보좌하는 서기장관이 있고 지방은 지방장관이 관할한다. 영문(營門·교회)에는 담임사관이 있어 복음선교와 예배, 지역사회 봉사활동 등을 지도한다. 영문에 소속된 남녀 세례 교인을 병사라고 부른다. 이들이 구세군 모금활동의 첨병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 구세군이 전파된 시기는 1908년 10월이다. 윌리엄 부스의 일본집회(1907년)에 참석했던 조선 유학생의 요청에 따라 허가두 사관이 선교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구세군을 상징하는 자선냄비는 수수한 차림의 서민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을 나누는 매개체다. 어머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와 고사리 손으로 기부하는 1천원, 1년 동안 모은 돼지저금통을 들고 오는 초등학생, 종종 걸음을 재촉하다 구세군 종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지갑을 여는 직장인의 모습은 매년 자선냄비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다.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의 미학이 담겨 있는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등장했다.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가 시당국의 허가를 얻어 오클랜드 부둣가에 솥을 걸어 놓고 모금한 돈으로 난민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세계 117개국에 퍼져나가 추운 겨울 이웃돕기 운동의 대명사가 됐다. 한국구세군 자선냄비는 1928년 박준섭 한국구세군 사령관이 서울 도심에 냄비를 설치하고 거리 모금을 시작한데서 유래했다.

자선냄비의 빨간색은 구세군의 붉은 방패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구세군은 가정용 솥을 매달아 자선냄비로 사용하다 1965년 붉은 원통형 양철제품, 2004년에 보다 견고한 철제제품으로 바꾸었다. 최근 광주 충장로 우체국 앞에 교통카드를 이용해 기부할 수 있는 디지털 자선냄비도 등장하는 등 시대가 바꿈에 따라 모금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자선냄비에 쌓이는 돈은 천원짜리가 제일 많다. 가끔 10만원 이상의 고액 수표도 발견된다. 지금까지 지역에서 나온 최고 기부액은 2006년 12월 동아쇼핑 앞 자선냄비에서 나온 100만원권 수표.

올해는 대구·경북 28곳에 자선냄비가 설치됐다. 대구의 대구백화점·한일극장·동아쇼핑 앞 등 12곳, 경북의 구미·김천 등 16곳에서 구세군 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금은 24일까지 진행됐다. 대구경북지역 모금액은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다. 2001년 1억1천200만원, 2002년 1억2천800만원, 2003년 1억2천870만원, 2004년 1억2천900만원, 2005년 1억3천만원, 2006년 1억5천500만원, 지난해 1억6천100만원이었다.

대구경북을 관할하는 경북지방영의 올해 자선냄비 모금 목표액은 1억7천만원이다. 경기불황으로 모금액 감소가 우려됐지만 다행히 목표액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북지방령에 따르면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 기부와 달리 경제가 어려워도 개인 기부자들의 따뜻한 손길은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선냄비 모금액은 저소득가정 의료지원사업, 이재민구호, 결식아동지원, 다문화가족지원 등 다양한 사회사업에 사용된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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