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 건설이 만병통치약?

입력 2008-12-20 06:00:00

"뭐니뭐니해도 건설이 최고" vs "언제까지 삽질 경제냐?"

글로벌 금융위기 유탄에 시름하고 있는 한국 경제의 회생 카드로 정부가 내놓은 건설경기 부양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경기를 살리는데 건설만 한 직종도 없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각종 대책을 내놓더니 연말부터는 '뉴(new) 운하' 정책으로 의심받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별도기사 참조)을 실시할 요량이다. 그러면서 '한국판 뉴딜 정책'이 되길 꿈꾼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건설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화를 더 키울 것"이라는 논지다.

◆정부 "위기확산 막고 경기 활성화" 추진

정부는 건설사업을 위기탈출 대책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10월 3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방 SOC 사업과 같은 경기활성화가 큰 사업을 할 것"이라 했고 이는 곧 2011년까지 14조원의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쏟아붓는 4대강 정비사업으로 현실화했다. 박 수석은 또한 "재정지출에서 경기활성화 효과가 제일 큰 것은 역시 건설사업"이라고도 했다. 허재완 중앙대 교수(도시계획학과)는 지난 18일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서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제조업 일자리 창출은 한계가 있다.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차선책이기는 하지만 현시점에서 유일한 대안'이라는 취지로 찬성입장을 밝혔다. 허 교수는 덧붙여 '4대강 정비 사업을 국토 재정비 사업으로 확대하는 등 더욱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줄 것'을 주문했다.

건설경기 부양책 찬성론자들은 또한 "한국 경제에서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도 내세운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출간한 '국민계정분석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건설업이 생산한 부가가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관련 업체 종사자만 국민경제의 35% 이상이라는 추정도 있다. 미분양 속출로 악화된 건설사 유동성을 해결하려면 건설경기를 부양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유동성 문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맞물려 있는 금융권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지난 6월말 현재 은행권의 PF 대출금액은 47조9천억원(비공식 85조2천억원)이다. 이 밖에 건설 투입 인력에 제한이 없어 실업층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근거로 제시된다.

◆한국 경제 고도화 "대안 필요" 의견도

정부의 믿음은 확고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무엇보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있는 시점에서 무리한 건설업 부양으로 '부동산 경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동산 광풍'으로 인해 너도 나도 주택을 구매하면서 부동산 가계빚은 700조원을 향해 가고 있다. 한국의 명목GDP 대비 토지자산 배율은 3.7배. 이는 일본이 지난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하기 직전의 5.7배에 근접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이를 연착륙시키지 못하면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불황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달라진 산업구조도 짚어봐야 한다. 정부가 참고한 미국의'뉴딜 정책'이나 1960~70년대 개발시대와는 달라진 현실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고도화한 산업구조에선 건설업을 부양하더라도 건설만 활성화할 뿐 전체 경기를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발표한 '2006~2016 중장기 인력수요 전망'이 이를 대변한다. 이 보고서에서 건설업의 취업계수(10억원어치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취업자 수)는 2001년 35.0에서 2016년 28.5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사업(45.9→83.4)이나 교육서비스업(36.5→54.8)이 증가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정부가 말하는 '10만여개 일자리 창출'도 임시직이나 일용직 취업자에 한정될 수도 있다.

건설업 관계자들은 건설경기 부양책 예산 대부분이 원도급자인 종합건설사에 묶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업계의 '이중계약서' 관행으로 인해 경제 활성화의 주체가 될 하청업체에 돌아가는 돈이 생각보다 더 적게 지급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공사장 인력 대부분이 해외 노동자여서 소비 진작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건설경기 활성화에 투입되는 예산의 대부분이 토지보상비에 쓰이고 이로 인해 이득을 보는 것은 지방 토호 같은 땅부자들"이라며 정부 정책에 줄기차게 반대 의견을 피력해 왔다.

결국, 한국의 산업구조상 건설업 부양책이 경기 진작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건설사에 대한 금융 지원과 구조조정 유도는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고부가가치 산업이나 창의성 개발 분야에 예산을 지원해 향후 시장을 대비하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의 근원적인 중장기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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