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요즘 세상살이가 어떻습니까. 많이 힘들지 않습니까. 퇴근길에 불러낸 친구와 마주앉아 텁텁한 막걸리 한 사발 마실라 치면 혼자서 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띱니다. 무슨 사연에 저리 혼자서 술을 마실까 생각해보지만 제 코가 석자인지라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형의 형편은 어떤지요. 대통령까지 나서 경기 활성화를 위해 은행보고 돈을 풀라고 윽박지르고 있지만 당최 은행들은 제 앞가림이 급해 돈줄을 꽉 틀어쥐고 놓칠 않는다내요. 그 뿐인가요. 기업체마다는 구조조정입네, 긴축입네 하며 찬바람이 부는 곳도 늘고 있다내요.
K형. 얼마 전 들은 일입니다.
친구 어머니께서 전화를 했더랍니다. 사연인즉, 그날이 친구 생일이었는데 이 친구는 깜빡 잊고 있었다더군요. 글쎄 칠순 노모가 직장에 있는 아들을 불러내 "에미가 주는 생일선물이다"며 흰 봉투를 건네더라는 겁니다. 안엔 만원짜리 5장이 들어 있었고요. 그리곤 총총걸음으로 당신 볼일을 보러 갔답니다. 그날따라 날씨는 어찌 그리도 차가웠는지.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지척에 있는 노부모의 집을 자주 들러보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친구는 얼떨결에 받아 든 흰 봉투를 쥐고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어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죠.
K형. 어머니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어머니'란 세 글자 속에는 한차례 북풍한설이 휩쓸고 간 뒤 내려쬐는 햇볕 한 줄기, 맞받아 서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봄날의 훈풍 같은 따사로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려울 때 일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한없이 넉넉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샘물처럼 솟는 사랑의 정이 어머니가 아닐까요.
'어머니는/눈물로/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의 씨를/아들들의 가슴에/심어주신다. 씨앗은/아들들의 가슴속에서/벅찬 자랑/젖어드는 그리움…' 정한모의 '어머니'란 시에서처럼.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당신의 눈물로 아들딸이라는 눈부신 진주를 만들어내십니다.
'회초리를 들길 하셨지만/차마 종아리를 때리진 못하시고/노려보시는/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꼭 껴안으시던 어머니/가슴이 으스러지도록/너무나 벅찬 당신의 포옹…' 박목월의 '어머니의 눈물' 또한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보석처럼 우리네 겨운 삶을 너무나 벅찬 포옹으로 비추는 등대가 됩니다.
K형.
이제 제 나이쯤 되어보니 삶이 어렵고 허전할 때면 헌신적이었던 어머니 생각이 절로 간절해집니다. 아마 어머니는 본능적인 친밀감의 대상이지만 다만 그 티를 못 낼 따름이지요. 헌데도 '엄마' 생각만 하면 마음은 소박해지며 단순해진 느낌을 받을 때가 왕왕 있습니다. 평소 약간의 친분이 있던 도광의 시인에게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물었더니 어머니를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맺힌답니다. 어머니는 감정의 순화요, 마음의 젖꼭지요, 가슴에 빛나는 별과 같다고 하더군요.
'…여름부터 가을까지/넓은 잎 떨구며/울고 섰는 것이 비파나무라더니/칠순을 겨우 넘기고 가실 일을/엇길로만 가던 자식이 비파나무로 서서/울고 우는 것이다…' 이제 자신도 일흔을 바라보는 시인은 어머니 산소 앞에서 이렇게 사모곡을 읊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수필가는 어머니는 늘 회한과 그리움의 대상이라더군요. 그에게 어머니는 가장 원초적인 모항(母港)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낯선 곳을 항해하면서 때론 엉뚱한 풍파를 만나기도 하고 때론 길을 잃어 헤매기도 하지만 언제나 돌아갈 모항이 있다는 건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거죠.
K형은 공감하십니까.
전 그저 듣고만 있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아! 이 시대. 이 험난한 시절에 역시 어머니란 존재가 있어 모두들 세상을 향해 열심히들 살아갈 수가 있구나'하고 말입니다.
언제가 읽었던 책이 생각납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 탤런트 김수미씨 등 47인의 유명인사들이 어머니를 소재로 쓴 글을 모은 책인데 책이름이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였습니다.
K형.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본 적이 언제입니까. 저도 꽤 오랫동안 못 잡아 본 손입니다. 우리 이제라도 그 손을 한 번 잡아 보지 않으렵니까. 비록 기름기는 빠져 주름진 손이지만 세상 어떤 미인의 손보다도 따뜻할 겁니다. 그럼. 약속한 겁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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