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학원 '백발 할머니 사기 주의보'

입력 2008-12-17 09:31:45

"교양있는 어르신 같아 믿었는데…감쪽같이 속았네요."

대구 수성구에서 한문학원을 운영하는 A씨는 얼마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손자 학원 상담을 왔다는 할머니에게 속아 4만원을 사기당한 것.

지난 10일 오후 말쑥한 옷차림의 한 60대 할머니가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가 우리말 실력이 떨어지는데 한자를 배우면 좀 나아질까 싶어 왔다"며 학원 문을 들어섰다. "손자가 캐나다에서 태어나 7년을 살다 얼마전 한국에 왔어요. 집에서 틈틈이 한글을 가르쳤는데 막상 한국 아이들과 공부를 하려니 실력이 모자라네요. 영어는 수준급이어서 주말에는 영어마을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입니다." 고운 백발의 할머니는 간간이 교양을 내비치며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갔다. 상담을 마치고는 "내일부터 손자를 보낼테니 잘봐달라"는 당부까지 하고 학원을 나갔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불과 한 시간도 안돼 학원을 다시 찾아왔다. "운전을 하다 인근에서 사고를 내 후사경(사이드 미러)을 부러뜨렸다. 합의를 해야하는데 현금을 가진게 없어 급하게 왔다"며 3만5천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A원장은 학생을 데려오기로 한데다 사정도 딱해 보여 4만원을 꺼내줬다. "내일 손자 편에 돈을 꼭 보내겠다"고 말한 할머니는 그날 이후 사라져버렸다.

뒤늦게 의심이 든 A원장은 혹시나 싶어 주변 학원 운영자들에게 수소문을 했는데 모두 비슷한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똑같은 인상착의의 할머니가 같은 수법으로 몇 군데 학원의 돈을 걷어갔다.

수성구 만촌동의 한 피아노 학원장은 "나도 호주머니를 털어 3만원을 줬다"고 했고, 한 미술학원장은 "의심쩍어 돈을 주지 않았다. 사기친게 맞느냐"며 거꾸로 물어왔다.

A원장은 "돈 4만원이 아까운 게 아니라 동정심을 유발해 푼돈을 버는 행태가 너무 얄밉고 사람을 함부로 믿지 못하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했다.

경찰도 최근 불경기를 틈타 유사한 소액 사기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공장소에서 '차비가 없다'며 속이는게 고작이었는데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업계의 관행을 이용해 지능적으로 푼돈을 뜯어가는 사기꾼이 많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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