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예수의 샅바를 잡다

입력 2008-12-17 06:00:00

조영남 지음/나무와 숲 펴냄

가수, 화가, 미술평론가, 방송인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조영남이 예수와 한판 샅바 싸움을 벌인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예수의 샅바를 잡다', 2000년 발간됐던 책인데 내용을 수정 보강하고 편집을 새로 했다. 올해 11월 일본 아카시 쇼텐(明石書店) 출판사가 일본어판을 내기도 했다.

"내가 말하려는 크리스처니티는 예수의 내면과 외면의 품성을 헤아려 나감으로써 그를 닮아 가려는 의지를 갖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예수와 정면 대결로 씨름을 한판 벌이는 것이다. 나의 작업은 '예수를 허공에다 올려놓고 맹탕으로 믿는' 자리에서 씨름꾼이 샅바를 잡듯 예수를 바짝 끌어당겨, 바로 보고 알고 바로 배우는 자세로 자리바꿈을 해보는 것이다."

난데없이 웬 예수 타령이냐고 묻겠지만 조영남은 1975년에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침례신학교에 입학해 5년 뒤 졸업장과 목사 자격증을 받은 사람이다. 군복무 중이던 1973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험 목사의 부흥 집회에서 성가를 부른 것이 인연이 돼 제대 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다.

이 책은 신학대학 시절 작성한 과제 논문을 바탕으로 썼다. 당시 과제는 '예수의 일생을 이야기로 만들어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조영남은 "예수에 관한 자료는 책방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모았다. 그러나 골목마다 빨간 십자가 등불이 선명하고 신앙심 깊은 이 땅에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예수의 생애(특히 4복음서)에 관해 쓴 책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한다.

조영남의 해박함은 이 책에서도 거침없음이 드러난다. 그가 써내려 간 예수의 일생은 무겁거나 지루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어딘가 덜 떨어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조영남이 어디 가볍게, 허투루 일을 할 사람인가.

책에는 한스 큉, 불트만, 프라이, 칸트, 야스퍼스, 바이스, 슈바이처 등 수많은 철학자와 신학자의 주장과 논쟁이 종횡무진 펼쳐진다.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까지 진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히 실존 인물인 동학의 최시형과 최제우를 요한과 예수에 비교해 분석한 대목, 예수의 삶을 나철, 원효, 강증산의 삶과 맞대놓은 구절은 그의 시각이 얼마나 넓고 독특한가를 보여 준다.

조영남은 종교 없이 인류 문명도 없었겠지만 종교가 인류를 부흥으로 이끌기도 하고 파국으로 몰아가기도 한다면서 기독교가 잘못 알려지고 쓰임으로써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바로 보고 바로 알자는 것이다. 진지하다 못해 엄숙하고, 믿음이 깊다 못해 일체의 다름을 인정치 않으려는 이 땅의 기독교계에서 조영남은 다시 한번 소란의 중심에 선 셈이다.

조영남은 기독교의 핵심을 예수의 사랑에서 찾는다. 나보다 낮은 사람의 발을 씻어 줄 수 있는 마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이다. 예수 믿고 세례 받고 꼬박꼬박 헌금 낸다고 천당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영남은 자신을 낮추고 버릴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다.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 조영남 자신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하늘이 무너져도 나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때려 죽여도 나보다 낮은 사람의 발을 씻어 줄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책 '예수의 샅바를 잡다'는 현대 기독교는 이른바 '신앙'이라는 물건을 만들어 예수의 윤리를 퇴색시켰다고 주장한다. '신앙만 붙들고 있으면 그만이다. 신앙이 모든 것을 보호해주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조영남은 죽었던 예수가 다시 살아나고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전설이나 신화의 한 조각으로 되어 가는 분위기에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이 승승장구 승인되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지적한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당에 간다는 터무니없는 교리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책 속 문장을 통해 조영남 문체와 시각을 직접 들여다보자.

'단지 성서 기록자들은 예수가 비록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가방끈이 짧긴 해도 열두 살의 나이에 프린스턴 대학의 신학박사 학위를 딸 만큼 천재적인 영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걸 예수의 어머니가 직접 목격한다. 어린 예수가 성전 안에서 늙은 율법사들과 온갖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게 전부다. 요즘 잣대로 견주어 본다면 복음서의 기록자들은 비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특출난 종교 지도자로 추켜세우기 위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실체를 거의 난도질해 버렸다. 부모의 육체적 관계도 없이 태어났다고 했으니 말이다 .' -47쪽-

'내가 지금까지 공부해서 알아낸 하늘나라는 예수 믿고 세례 받고 예배당에 다니고 헌금 꼬박꼬박 내면 들어갈 수 있는 그렇게 간단한 곳이 아니다.' -92쪽-

조영남은 '예∼수 믿으세요'가 아니라 '사랑하세요'가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가 이 책에서 펼치는 '예수론'이 옳은지 그른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간에 조영남은 팔방미인이고 못 말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350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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