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어린왕자(1974)

입력 2008-12-13 06:00:00

사막 한가운데 어린왕자가 나타나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

마치 홀린 듯 비행사는 양을 그린다. 그런데 그려주는 양 마다 '아파 보인다'느니 '늙었다'느니 퇴짜를 놓는다. 그래서 아예 조그만 구멍을 낸 통을 그려준다. 그제야 어린왕자는 통 속의 양을 들여다보며 만족해한다.

동화라기에는 너무나 철학적인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에게는 통 속의 양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작은 구멍을 통해 그 속에 들어앉은 양을 본다.

"절대 잊지마.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왕자'는 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1900~1944)가 1943년 발표한 동화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철학적 성찰이 지구에 온 어린왕자를 통해 그려진다. 생텍쥐베리는 작가이면서 비행사이다. 우편비행을 하며 '남방우편기'를 쓰고, 아르헨티나 항공회사에 취직해 '야간비행'을 집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용기 조종사로 참전해 1944년 44세 되던 해 정찰비행에 출격했다가 행방불명됐다.

지난 3월 88세의 전직 독일공군 조종사가 자신이 생텍쥐베리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평생 자책하며 살았다. 그때는 조종사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생텍쥐베리가 탄 것을 알았다면 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비록 하늘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비행사로서 최고의 시간들을 보냈다. 땅 위의 인간들이 볼 수 없는 것을 하늘에서 느꼈다. 어린왕자가 그의 영감 속에 들어온 것도 별이 쏟아지는 신비로운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어린왕자'는 삶에 대한 성찰을 시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시대를 넘어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것을 소중하게 다루고 아껴야 한다'는 것을 우화적으로 그린 때문이다.

여우가 말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그건 마음으로 보는 거야.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그 장미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리를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잊으면 안 돼. 넌 언제까지나 네가 길들인 것에 책임이 있어."

수백만 송이가 흐드러진 장미꽃밭을 지나며 어린왕자는 정말 소중한 것은 작은 별에 외롭게 놓아둔 자신의 장미라는 것을 깨닫는다. 미안해. 너를 그렇게 둬서. 이제야 알았어. 정말 소중한 것은 수백만 송이 꽃밭이 아니라, 너란 것을.

이 세상에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유독 한 개의 별이 자신의 눈에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곳에 자신이 사랑하는 장미가 있고, 자신이 그 장미를 보호해줄 책임과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화가 홍창룡은 '어린왕자'를 전신이 별로 장식된 달라이 라마로 현신시켰다. 거대 중국에 나라를 빼앗긴 어린 법왕(法王). 오늘도 전 세계를 떠돌며 티베트의 고난과 운명을 전파하는 달라이 라마를 여러 별을 여행하는 어린왕자와 오버랩시켰다. 곱슬곱슬한 금빛 머리와 초록색 코트를 벗고, 푸른 색 전통 옷을 입은 새로운 모습의 어린왕자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별이 모두 불가사리다. 하늘의 별을 바다 심연 속에 빛나는 또 하나의 별로 진화시켰다.

시인 류인서는 여우의 관점으로 슬픈 시를 썼다.

구미호의 전설에서 현대까지 시공을 아우르는 신비롭고 동화적인 시다. 꼬리에 해와 달을 매달아 지치도록 끌고 싶었던 여우가 꽃과 치마와 신발을 사기 위해 꼬리를 팔고, 이제는 피 묻은 꼬리 끝을 치마 아래 감춘다는 슬픈 동화다. 나를 훔쳐 나를 산, 여인의 슬픈 잔혹사가 '여우'에서 느껴진다.

당신에게 잘라준 내 예쁜 꼬리는 어디 있을까. 피 묻은 꼬리 끝에 얼음별, 얼음달을 달고 이렇게 절걱대는데, 해와 달을 매달고 싶었던 내 예쁜 아홉 꼬리는 모두 어디 갔을까.

문득 상자 속의 양을 찾고 싶어진다. 나만의 양, 나만의 장미를.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어린왕자(The Little Prince, 1974)

감독:스탠리 도넌

출연:리처드 칼리, 스티븐 워너, 밥 포시

러닝타임:88분

줄거리: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프랑스의 비행사(리처드 칼리)는 금발의 어린 왕자를 만난다. 어린 왕자는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이 다른 별들을 여행하면서 본 것들을 얘기해준다. 어린왕자는 사랑하는 장미꽃이 있는 자신의 별을 떠나 지구에 온다. 지구에서 처음 만난 여우는 '진실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어린왕자는 자신의 장미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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