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얼굴을 온통 뒤덮은 하얀 수염, 발갛게 포동포동한 뺨 위에 작고 파랗게 빛나는 눈, 작고 뚱뚱한 귀여운 몸매의 할아버지는 어딘가 터키인을 닮았다.
터키는 산타클로스의 고향이다. 터키 남부의 따뜻한 지중해 연안, 안탈리아 지방에 산타클로스가 태어난 고대 리키아왕국의 도시 '파타라 유적'이 있다. 터키 남부는 겨울에도 해수욕이 가능할 만큼 따뜻한 곳이다. 진짜 산타클로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새하앟게 눈으로 뒤덮인 마을에 루돌프사슴이 끄는 설매를 타고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타클로스의 본명은 성 니콜라스. 그는 항상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어린이를 사랑했으며 몰래 창문으로 선물을 던져넣고 사라져버리곤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그 지역의 교회 대주교가 되었으며 러시아 정교의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파타라에 가면 성 니콜라스의 묘와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다.
성 니콜라스의 이야기가 서양에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은 서양식으로 '산타클로스'가 되었고, 미국의 코카콜라 광고에 처음으로 빨간옷을 입고 등장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완성된 것이다.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터키 서남부의 작은 시골마을 '파묵칼레'에 있었다. 비가 많이 내려 음산하고 축축한 터키의 겨울밤, 작은 시골호텔에서 14세 터키 소녀 아이세귤(호텔 주인의 딸)과 나는 난로불에 차이(터키식 홍차)를 끓이며 귤을 까먹었다.
"산타클로스한테 선물 받을 양말 걸어뒀니?"
아이세귤은 "그게 뭐야?"라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뜬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침대맡에 양말을 걸어두면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넣어주고 간다는 거 몰라?"
그녀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란 듯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는 전세계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며 잠들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샴페인을 마시고, 가족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 밤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세귤은 그렇게 멋진 이야기를 왜 자기만 모르느냐며 심통을 부렸다.
파묵칼레 마을은 벌써 평화롭게 잠들고 있었다. 이 마을의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은 전 세계의 소란과 흥청거림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어제와 똑같은 저녁식사를 하고 조용히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터키는 국민의 99%가 무슬림인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 국가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아무 일 없는 조용한 겨울밤'이라는 것을 세삼 깨달았다.
"그럼 넌 산타클로스가 네 나라 터키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몰라?"
아이세귤은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학교에서 배웠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온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만약 터키에도 크리스마스 이브가 있다면 산타클로스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하하! 양말만 걸어두면 터키든 한국이든 산타가 올거야. 오늘 밤에 양말 꼭 걸어둬."
나는 장난기가 발동해 오늘 밤에 아이세귤의 양말에 선물상자를 넣어두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이세귤이 잠들기도 전에 내가 먼저 잠들어버리는 바람에 산타 흉내를 내보려던 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세귤은 몹시 실망하여 역시 터키에는 산타클로스가 오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나라의 명절이야. 대신 터키에는 라마단축제(매년 금식일이 끝난 3일 동안 열리는 축제)가 있잖아."
아이세귤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크리스마스가 특별할 이유는 없다. 나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하지만 옆집에서 잔치를 하면 떡 한 쪽이라도 얻어먹으며 같이 어울리고 싶은 마음처럼, 지구 어딘가에서 축제가 벌어지면 비행기를 타고 가서라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처럼, 크리스마스만 되면 괜히 마음이 들썩거리고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를 갖고 싶다. 요즘엔 터키에도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는 크리스마스가 생겼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걸린 빨간색 초록색 리본들과 선물상자들 때문이다. 산타 모자를 쓴 무슬림 꼬마들이 선물상자를 안고 가는 거리 풍경이 뉴스에도 나온다. 다국적 기업들의 크리스마스 마케팅이 이슬람 국가들에까지 진출한 것이겠지 싶다.
그래도 파티를 함께 즐기고 싶은 맘은 누구나 똑같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달콤한 잼과 고소한 치즈가 한 상 차려진 터키식 아침밥을 먹으면서 내년에는 아이세귤에게 꼭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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