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환율 시대 예산 절약법은?

입력 2008-12-11 06:00:00

최근 일행 3명과 함께 일본의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학부 및 대학원생의 산·학 인턴십 프로젝트와 창의적 공학설계 발표회 참관차 가나자와공업대학을 방문했다. 이번 출장은 가나자와공업대학의 여러 산·학협동 사례를 배우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정부지원 사업으로 이뤄지는 연구 장비 도입과 관련한 느낌도 남달랐다.

일행 중 두 사람이 출국 전 미처 국내서 환전을 못한 관계로 일본 나리타(成田) 공항에서 환전을 하던 중 한화와 엔화의 환율이 0.05:1, 즉 우리 돈이 20분의 1로 교환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화 10만원이 그곳 은행의 환전소에서는 5천엔으로 교환된 것.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한화 약세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가 심각한 상황을 넘어 우리 스스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인 것처럼 인식됐다. 금융위기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경제규모 10, 11위인 우리가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한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론 억울함마저 느껴져 모두들 경비를 아껴쓰는 노력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던 중 얼마 전 지역의 한 연구소에서 국가지원 사업으로 수행되고 있는 장비도입심의회의에 참석하면서 또 한번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고환율 시대에 살고 있는지 실감했다. 이 연구소는 정부 지원금으로 지역업체와 연구소가 필요로 하는 시설 및 연구장비를 구축하는 사업을 지난 3년간 진행하던 중 금년이 마지막 해로 연초 구입예정이던 5종의 연구 및 시설장비가 환율인상 때문에 더 이상 계획대로 구입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환율 인상으로 구입예정 장비의 추가부담은 5종 구입 장비 중 많게는 1억2천만원 정도 추가지불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문제는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이 정도의 환율이 아니어서 주어진 금년도 예산 범위에서 지역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 및 시설 장비를 무리없이 구입가능할 것으로 생각됐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사업주관 책임자는 상위 기관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어떤 식으로든 구입 예정인 장비보다 싼 다른 장비로 대체하더라도 구입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지금 현재로선 그러한 노력이 그나마 가장 적절한 조치라 여겨지지만 이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모순이 있다. 지금으로선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환율이 금년초 수준으로 당장 내려가고 그래서 당초 계획했던 장비를 차질없이 구입하면 해결되겠지만, 단시간 내 그럴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어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을 안게 됐다.

차선책으로는 남은 돈으로 구입가능한 대체장비를 구입하는 것과 아니면 환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안정될 때까지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 장비에 한해서는 구입을 연기시켜 주는 방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예산을 집행 관리하는 담당 부서에서는 그 해에 계획된 예산만큼 각 연구기관이 회계연도에 맞게 지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특히, 이 연구소의 경우처럼 이번 사업이 다음해에도 계속되는 사업이 아니라 금년으로 종료되는 사업의 경우는 더욱 더 회계연도에 맞게 지출을 해야 하므로 후자의 차선책을 당장 적용하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현 상황에서는 당초 계획했던 장비의 일부를 구입하고 잔액으로는 처음에 계획했던 장비를 모두 구입하기란 환율인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연도에 책정된 예산을 사업종료 시점까지 다 소진해야 된다고 하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득이 잔액에 맞추어 집행해야 한다. 이럴 경우 당초 구입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차순위를 구입하게 될 것이 분명하고 또 그렇지 않으면 당장 연구나 기타 설비 구축에 필요하지 않은 장비를 금액에 맞추어 구입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위기의 시기이다. 이럴 때는 한푼의 국가 예산도 아끼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연구기관이 갖고자 하는 장비와 설비는 지역기업과 연구소가 꼭 필요로 하는 장비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격으로 구입해야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틀에 박힌 규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절히 변형하여 적용하는 새로운 틀(넓은 의미에서 New Deal)의 적용도 필요하다.

장비도입과 관련한 심의의결기관인 지역의 전략산업기획단, 중앙의 산업기술평가원, 그리고 지식경제부 등에서는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지금 당장 급하게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장비가 회계연도나 사업종료 시기에 떠밀려 마지못해 비싼 값으로 구입 절차가 이루어지고 있지나 않은지 국가 전체적으로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만약 이러한 일이 여러 연구기관에서 발생하고 있다면 각 연구기관의 실정을 감안하여 탄력적으로 구입 시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환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매를 진행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력은 외국 출장 중 우리 일행이 경비를 아껴 사용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삼수 영남대학교 섬유패션학부 섬유나노소재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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