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수기] 금상-짠티튀안 '한국 생활과 한국어'

입력 2008-12-09 09:41:41

▲ 짠티튀안(왼쪽)씨가 결혼식에서 남편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짠티튀안(왼쪽)씨가 결혼식에서 남편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는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와 함께 가난하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나도 공장에 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부모님과 오빠도 열심히 살았지만 항상 힘들고 가난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온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 부자 나라, 어느 집이나 돈이 많아 풍족한 생활을 하는 나라였다. 그래서 그 남자와 결혼을 하였고 흥분과 기대 그리고 두려움을 안고 2006년 11월 29일에 한국에 와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말도 모르고 모든 것이 다 어렵고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우선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된장국을 먹었는데 냄새가 너무 이상해서 토할 것만 같았다. 또 모든 음식에 고춧가루가 들어가서 너무 매웠다. 날씨는 겨울이었는데 얼마나 추웠는지 그저 울고만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한국의 겨울을 좋아한다. 내가 살았던 베트남에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눈을 구경할 수 없었는데 한국에 와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랍고 눈이 꽃처럼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봄에는 꽃이 피고 단풍 든 나무들이 산을 감싸고 있는 가을 모습도 아름답지만 나는 눈이 오는 겨울이 더 좋다. 처음에 먹을 수 없었던 한국 음식도 이제는 너무 맛있게 잘 먹는다. 특히 김치를 김치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먹는 것은 베트남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김치를 기름에 볶기도 하고, 찌개도 하고, 김칫국도 끓이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맛있지만 특히 삼겹살에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 덕분에 한국에 온 후 몸무게가 5㎏ 더 나간다. 너무 잘 먹어서 남편은 내가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고 웃는다.

어느 날 하루는 찜질방이라는 곳에 갔는데 너무 더워서 숨이 차서 힘들어 죽겠는데 한국 아줌마들은 '아 시원해, 시원해'라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형님이 땀을 빼면 시원해진다고 조금만 참고 있으라고 해서 눈을 딱 감고 헉헉거리며 있다가 나왔다. 나와서 조금 있으니까 정말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 시원해져서 정말 좋았다. 또 전화만 하면 모든 것을 집으로 배달해 주는 일, 부산에 갈 때 타봤던 KTX라는 고속열차는 비행기만큼이나 빠른 것 같아서 너무 놀랐다. 컴퓨터로 옷을 살 수 있는 것도 좋고, 컴퓨터에 글을 쓸 수 있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올릴 수 있는 일, 이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한국의 모습을 좋아하면서 한국 생활의 편리함을 느끼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잘 살고 있다.

지금 내가 가장 기쁜 것은 한국말을 조금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한국말을 몰랐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밖에 나갈 수도 없었고 사람만 만나면 무서웠다. 한국말을 몰라서 남편이 젓가락을 찾으면 국그릇 갖다 주는 날이 많았고, 남편이 나에게 '밥 먹었어?' 하면 '없어요', '추워?' 해도 '없어요' 무조건 '없어요', '몰라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또 형님한테 '밥 먹어'라고 해서 남편과 형님이 놀라면서 웃었던 날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한국말을 몰라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포천시청에서 한국말을 무료로 가르쳐 준다고 하여 한국말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운천에서 포천시청까지 버스로 30분이 걸린다. 남편은 길을 모르는 나를 위해서 포천시청에 데려다 주고 내가 공부하는 2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렸다가 공부가 끝나면 다시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작년 8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올해는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공부방에서 4월부터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집에 오면 또 남편과 함께 한국어를 공부한다.

우리 한국어 선생님은 나와 같은 외국인 신부들은 시간이 없고 힘들더라도 제일 먼저 한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자주 얘기하신다. 한국말을 배우는 것이 첫째로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 그 말을 나는 알 것 같다. 한국어를 아니까 한국 요리책을 읽을 수 있고 그래서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남편과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면 더 다정한 마음이 든다. 한국말을 할 수 있으니까 집 밖에 나가도 무서운 마음이 조금 든다. 그리고 훗날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서도 한국말을 더 열심히 공부해서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 지금 한국어 공부를 하는 공부방에는 처음에는 많았던 학생이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서너 명 온다. 아기를 낳아서 오지 못하고, 일 때문에 오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한국어 공부에 오지 않는다. 한국어를 먼저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그럴 수 없는 여자들을 보면 조금 안타깝다. 한국 남편들이 먼저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면 정말 좋겠다는 마음이 많이 든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나처럼 한국에 시집 온 외국 여성들을 위해서 포천시청에서 베풀어준 많은 행사에 참여하면서 한국 문화도 많이 배웠다. 한국 요리를 배우는 체험, 농사 체험, 한국 민속촌 관람, 사물놀이 공연 등 여러 가지 문화 행사에 참여해서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익숙해졌다.

성공한 나라, 부자 나라인 한국에 오면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나는 한국이 모두가 잘사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남편과 조그마한 치킨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장사가 너무 안 돼서 남편과 나는 걱정이 많다. 내가 공장이라도 다녀서 돈을 벌고 싶지만 공장에 취직하기도 너무 어렵다. 어쩌다 한 번 취직하여 몇 달 일을 했는데 월급을 안 줘서 남편이 의정부에 가서 고소해서 겨우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의정부까지 가려면 하루에 겨우 몇 번 다니는 버스로 1시간 30분을 가야한다. 이렇게 어려운 형편이지만 남편은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돈을 부쳐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 남편은 다른 남자들보다 그렇게 잘생기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최고인 남자다. 한국말도 모르고, 한국 음식도 할 줄 모르던 나를 위해 여러 가지로 애써주고 많이 도와 준 남편이 정말 고맙다. 한국어를 가르쳐 준 선생님께도 고맙고, 한국 문화 등을 체험하게 해준 분들께도 정말 고맙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우리 남편, 사랑해요."

한국에 온 지 이제 2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처음과는 정말 다르게 이제는 어엿한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그리고 가끔씩 사랑하는 남편과 참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도 나는 이 한국에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려갈 것이다. 한 아내로서, 한 어머니로서 부끄럽지 않은 한국인이 되어 살아갈 것이다.

짠티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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