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병자호란 발발

입력 2008-12-09 06:00:00

1636년 12월 9일, 후금은 국호를 淸(청)나라로 바꾸고 10만명의 병력을 앞세워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공격해 왔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이미 조선과 후금은 형제지국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1632년 후금은 만주 전역을 석권하면서, 양국관계를 군신관계로 고칠 것을 포함한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이러한 요구로 인해 조선내에서 척화론이 대두되고, 양국관계는 악화돼 갔다.

이에 따라 청 태종 홍타이지는 우수한 기동력으로 순식간에 수도를 위협해 왔다. 의주부윤 임경업이 백마산성을 굳게 지켰으나, 청군은 이 길을 피하여 바로 서울로 진격한 것. 조정에서는 종묘사직의 神主(신주)와 비빈들을 강화도로 피란시키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피란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져 남한산성내에는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 청군이 강화도마저 함락하자 조선 정부는 항복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식을 치렀고 세자를 인질로 해서 돌아감으로써 병자호란은 끝이 났다.

이후 조선은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할 때까지 매년 수많은 조공물을 바치게 됐다.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가장 큰 패배로 기록되고 있다.

▶1941년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1968년 이승복 가족, 무장공비에 학살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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