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첼로

입력 2008-12-08 06:00:00

그리운 아버지의 목소리. 뚱뚱하지만 허리가 잘록한 애인.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가까운 음색을 가진 악기. 그러나 결코 화려하거나 앞서가지는 않는 그, 첼로. 첼로에 빠졌다. 모나지 않는 소리를 가지고 그윽한 시선으로 사람을 응시하는 듯한 풍미를 가진 그가 매력적이다.

모든 작곡가들의 현악사중주곡을 들어보라. 첼로는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할 때 꼭 제 목소리를 내어주고, 제 몸짓을 보여주며 화합한다. 아니 교향곡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이올린과 관악기가 화려하고 현란하게 앞서가면, 첼로는 부드럽게 수습한다. 이뿐이랴. 자신만을 위해 마련한 독주와 협주의 자리에서도 겸손을 알고 깊이를 준다.

이런 그의 모습이 한때는 미웠다. 세기의 작곡가들이라는 사람들이 뭐 이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어떤 현악사중주곡을 들어도 잘 바뀌지 않는 그의 자리매김이 시시했다. 첼로를 앞세워서 좀 위풍당당하게 음색을 꾸며보면 안 됐을까? 하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슈베르트의 작품번호 D810과 D821, D929, D897 등을 들으면서 생각을 바꿨다. 이대로도 좋지 않은가? 슈베르트의 작품 '죽음과 소녀'를 들으면서 현악사중주곡이 아니라 바이올린 협주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너무도 선명히 내려앉는 첼로의 숨은 듯한 소리가 얼마나 장엄한가. 하이든과 베토벤의 후반기 현악사중주곡을 들으면서는 앞으로 첼로의 음색처럼 살아가리란 다짐까지 했다. 비록 음색이 높고 칼칼하지는 않아도 부드러움 속에 감춰져 있는 화려함도 있고, 주변을 아우르며 품는 맛도 있는 첼로만이 낼 줄 아는 소리.

어느 순간, 아인슈타인의 튀는 듯한 행동까지 이해하게 됐다. 바이올린을 전혀 연주할 줄 모르지만 외출 때마다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을 들고 다녔다. 나도 첼로를 들고 다니고 싶었다. 연주능력은 없지만, 항상 곁에 두면서 그를 닮아가고 싶어서. 그러나 식구들이 질색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첼로를 닮은 친구를 사귈 수밖에.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는 첼로를 닮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먼저 앞서가며 튀고 싶지, 주변을 받쳐주는 배려를 가진 사람이 드물다.

집단 속으로 들어가면, 이 같은 풍경은 훨씬 선명하다. 국민의 대표라고 뽑아놓은 몇몇 국회의원들이 회기 중 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면 아연실색할 뿐이다. 그저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뒤진다는 열등감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주변과 함께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고 싶을 때, 첼로곡을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서동훈(대구미래대 영상광고기획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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