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정서없는 한국영화

입력 2008-12-06 06:00:00

최근 그동안 못 본 일본영화를 DVD로 구입해 관람했다.

미키 사토시 감독의 '텐텐', 이시이 카츠히토 감독의 '녹차의 맛', 시노하라 테츠오 감독의 '천국의 책방' 등이다.

'텐텐'은 아내를 죽인 남자가 자수하는 길에 아들 같은 동행을 얻어 도쿄 시내를 배회(원제는 이리 저리 '전전'한다는 뜻)하는 이야기이고, '녹차의 맛'은 3대가 살고 있는 시골의 한 엽기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녹차처럼 따뜻하게 그렸다. '천국의 책방'은 청년 피아니스트가 저승과 이승으로 갈린 남녀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판타지 멜로다.

차이는 있지만, 일본영화가 추구하는 일본적 정서의 맛은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세상을 긍정하는 감독과 캐릭터의 사랑스러운 감성 등이 잘 묻어난다. 특히 '텐텐'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처럼 지내는 의사(擬似)가정을 끌어넣어 현대인의 외로움과 해체된 가정을 잘 비유하고 있었다.

일본영화를 보다가 최근 한국영화의 정서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멜로붐이 불었고, 조폭영화로 액션판타지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멜로와 조폭영화가 한국 정서를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이번 주 개봉된 '과속스캔들'은 중3때 동네 누나와 첫 경험을 한 라디오DJ가 성인이 된 후 다 큰 딸과 그 딸이 고1때 미혼모로 낳은 손자가 함께 들이닥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판타지 휴먼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이야기다. 아직 철없는 할아버지와 어른 같은 손자의 티격태격 코믹한 상황과, 스캔들을 두려워하는 연예계 행태를 보여주며, 아버지와 딸의 감동적 화해라는 흐름을 잡고 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코믹과 감동에 전편을 할애한다. 그런데 지나치게 인공적이고 상투적이다. 손자가 피아노 천재이고, 딸 또한 천부적인 노래 재능을 타고났다는 식의 설정 또한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가공된 상황, 얄팍한 감동은 최근 한국영화가 집착하는 포맷이다. 그 속에서는 은유도 없고, 상징의 맛도 없다.

최근 한국영화가 그냥 휴대폰의 좁은 LCD 창처럼 경박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영화를 찍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스토리의 깊이보다는 감각적 인공미에 목을 매는, 모두 10대 관객들을 노린 전략이다. 그런데 18세 관람가 영화도 '미인도'처럼 국적불명의 핍쇼(훔쳐보기 쇼)나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다.

불황의 여파로 한국영화의 흥행논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도 배급사에서 '노!'하면 관객들에게 선보일 기회조차 없다. 그러니 일부 10대 관객들이라도 잡아보자는 식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하향평준화를 넘어, 국적불명의 아동영화나 찍어낼 모양이다.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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