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농업을 준비하자] ⑦일본 농촌의 명암

입력 2008-12-05 10:19:59

▲ 교토대학과 함께 정밀농업을 시범실시하고 있는 난탄시 야기지역에서는 가축분뇨를 활용한 액비를 논에 공급한 뒤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
▲ 교토대학과 함께 정밀농업을 시범실시하고 있는 난탄시 야기지역에서는 가축분뇨를 활용한 액비를 논에 공급한 뒤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 장군들의 고향인 아이치(愛知)현은 시설 원예농업이 활발해 '야채 왕국'이라고 불린다. 양배추, 콜리플라워(Cauliflower·브로콜리의 일종), 국화, 장미 등은 생산량 전국 1위를 자랑한다.

특히 최근에는 정밀농업을 일본 내에서 가장 먼저 도입,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현청 소재지인 나고야(名古屋)시 인근의 도요하시(豊橋)시에서는 2002년 'IT농업연구회'가 발족돼 미국식 정밀농업을 실시했고, 도요타의 고급차 브랜드인 렉서스생산공장이 있는 다하라(田原)시에서는 3년 전부터 토양분석센서를 양배추밭(1㏊)에서 실험했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토양분석비용은 10a당 2만엔 수준으로 높았지만 토양 자체가 질소비료를 뿌려도 많이 유출되는 성질이어서 논의 위치에 따라 비료 양을 조절하는 변량시비의 효과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큰 기대를 갖고 참여했던 농민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도요하시의 정밀농업을 추진했던 제3섹터 기업(민관공동출자기업)인 '사이언스 크리에이트'의 야마무라 도모히로 식농산업클러스터 담당은 "농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활동도 많이 했지만 효과가 적게 나타나자 정밀농업에 대한 농가들의 열기가 식어버렸다"며 "원예산업의 경우 시설투자비에 비해 농자재 투입비용이 적은 점을 간과한 게 실수였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만큼만 농약과 비료를 사용해 농업경영비용을 줄인다는 것이 정밀농업의 장점이지만 아이치현의 토양·농업특성을 무시한 채 적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이야기였다.

반면 교토 인근 난탄(南丹)시 야기(八木)지역은 정밀농업이 순조롭게 정착돼 가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축산업이 발달한 이 지역은 1997년 축산분뇨를 활용, 액비를 생산하는 시설을 갖췄다. 북해도를 제외하면 본토에서는 최초였으며 메탄가스로 전기도 생산한다.

이후 관련 법에 따라 설립된 야기농업공사는 2004년부터 교토대학과 손을 잡고 정밀농업을 시작했다. 액비를 사용하면 생산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수확량 모니터링, 작물 생육상태 원격탐사, 토양분석 등을 통해 검증한 것.

나카가와 요시테루 야기농업공사 사무국장은 "0.3㏊ 정도의 논을 소유한 농가 5곳부터 정밀농업을 도입했는데 밥맛이 좋아지는 등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내년에는 시험면적이 13㏊로 늘게 됐다"며 "농민들이 수동적에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녹차밭에서도 2004년부터 생육상태 원격탐사를 시작했다. 수확일에 따라 녹차잎의 가치가 크게 달라지는 점에 착안, 과학적으로 가장 경제적 가치가 높은 수확일을 제시할 수 있는 것.

류찬석 교토대학 연구원(박사)은 "녹차 잎의 질소함유량을 측정하면 그동안 경험에만 의지했던 수확일을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며 "정밀농업을 잘 이용하면 비전문가도 훌륭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개인 또는 단체단위 내에서만 정리되고 전승돼 온 농업정보와 기술의 축적이라는 면에서는 정밀농업이 바람직하지만, 일본의 두 사례에서 보듯 정밀농업이 모든 곳에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순하게 보면 조건이 불리한 지역에서 도입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처음부터 높은 기대를 갖고 접근했다가는 초기단계에서 좌절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일본에서 정밀농업이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시카와현 농업종합연구센터의 에이지 모리모토 박사는 "정밀농업의 확산을 위해서는 구체적 목표 아래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꼭 필요한 기술을 하나씩 차례로 도입하다 보면 농민들은 전체 시스템을 자연스레 이해하고 동참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토대학 우메다 미키오 교수는 "정부나 농협 등 관련기관의 역할도 필요하지만 한국에서도 정밀농업을 농업 발전의 수단 가운데 하나로 보고 접근해야 현장 적용이 쉬울 것"이라며 "일본과 한국이 다른 산업분야와 달리 농업경쟁력이 낮은 이유는 지역별 특성을 살리지 못한 채 농업정책을 관념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교토에서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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