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정성' vs 영남의 '무심'

입력 2008-12-04 09:54:33

며칠 전 대구의 A국회의원은 박광태 광주시장이 택배로 보낸 전라도 김치 네 포기를 받았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택배 안에는 '여러 가지로 도와줘서 고맙다. 김장철이라 얼마 전 광주김치대축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치를 조금 보낸다'는 박 시장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시중가 2만~3만원에 불과한 김치 몇 포기지만 A의원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B의원은 국회특위위원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인천시와 전남도 고위관계자들의 축하방문을 가장 먼저 받았다. 이들은 위원장 내정을 축하하면서 2014인천아시아경기대회와 여수 F1대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 관계자와 대구시가 B의원을 찾아온 것은 한참 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B의원의 의원회관에는 박준영 전남지사가 보낸 나주 배 한 상자가 택배로 배달됐다. 당시 국정감사를 앞두고 밤을 새워가면서 국정감사를 준비하던 B의원실 보좌진들에게는 좋은 간식거리였다.

C의원은 최근 호남지역 한 자치단체장이 보낸 지역특산품을 받아 보좌진들과 나눠 먹었다. 평소 친분이 없는 단체장이었고 별다른 부탁이나 메시지도 없었다. 그래서 C의원은 특산품을 보낸 뜻이 호남지역 예산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말 것을 간접적으로 부탁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얼마전 국회 상임위에서 몇 차례 지역편중예산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호남권의 대국회 로비행태는 전방위적인데다 꾸준하고도 집요하다. 정부부처 관계자를 찾아 예산을 설명하려고 담당과장과 사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방문하겠다고 한 후 '올 필요없다'고 해도 굳이 찾아와 '귀찮게'(?)한다. 전화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찾아가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경북 공무원들은 올 필요없다고 하면 아예 찾아가지 않는다. 다시 전화할 생각도 않는다. 심지어 호남 사람들이 공무원을 찾아나서는 것을 비웃기까지 한다.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호남 사람들이 대구경북 의원들에게 갑자기 자세를 바꾼 것이 아니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한나라당 주호영(대구 수성을) 의원은 "호남 사람들이 그런 정성으로 대구지역 정치인들에게도 신경을 쓰는데 무슨 일이든 못하겠느냐"며 대구 공무원들의 무심한 태도를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D의원은 "지역의 대형 예산을 확보하는데 전력을 다했지만 지역단체장으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말 한 번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호남 사람들한테 배워야 할 점들이 적지않다"며 대구와 경북의 공무원들이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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