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간과 숲, 기생 아닌 공생으로

입력 2008-12-03 06:00:00

사전을 찾아보면 기생(寄生)은 '서로 다른 종류의 생물이 함께 생활하며, 한쪽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이 해를 입고 있는 생활 형태'를 말한다고 되어있다. 공생(共生)은 '서로 도우며 함께 삶. 종류가 다른 생물이 같은 곳에서 살며 서로에게 이익을 주며 함께 사는 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인간과 숲은 어떤 관계일까? 아무래도 인간이 숲에 기생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숲에 대해 무차별적이다. 본디 숲은 자기 스스로 존재해 왔을 뿐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인간은 숲 없이는 살 수 없다. 지구상 모든 생명이 그렇듯 인간의 삶의 기반은 숲이다. 숲이 인간으로부터 덕 보는 게 없고 인간은 숲으로부터 생명과 생활의 터전을 제공받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 숲에 기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인간이 숲으로부터 이익을 얻지만 숲을 해치는 게 없으면 기생이 아니다. 이것은 한쪽만 이익을 보는 편리공생(片利共生)이다. 숲을 자연 그대로 잘 보존하고 지키는 것을 넘어 나무를 심고 심은 나무를 잘 가꿔 나간다면 편리공생을 넘어 공생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인간은 유사 이래 산을 깎고 숲을 태워 농경지와 목초지, 공장과 도시를 만들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구 에너지의 흐름을 왜곡시켜 왔다. 일방적 이익을 편취했을 뿐만 아니라 숲의 존재를 위협해 왔다.

다만, 인간에게 만물을 지배해 자신의 안녕과 인간의 번성을 꾀할 자격과 권리가 주어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숲을 이용하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숲을 파괴하는 행위까지도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그 같은 권한이 주어졌는지 여부는 그만두더라도 인간의 문명은 그런 생각을 바탕 삼아 발전해 온 게 분명하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임하면서 숲을 비롯한 모든 자연을 타자화하면서 물질적 번영의 금자탑을 쌓아왔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이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첫째, 자연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이 정말 만유를 주관하는 그 어떤 존재에 의해 주어진 것이냐는 의문이다. 인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설사 인간이 그런 권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 인간이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 하는 짓이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선용과 이용이 아니라 착취와 정복에 가깝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숲 등의 파괴에 의한 지구 온난화, 물 부족, 동식물의 멸종이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면, 인간이 숲에 기생하고 있는지, 인간이 숲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인간과 숲의 공멸만은 막아야 한다는 점과 그러한 인간과 숲의 공존은 인간 하기에 달렸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럼 어찌하면 인간과 숲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까? 우선 인간들의 마음에서 숲을 파괴하지 않고 편리공생 정도만이라도 하겠다는 다짐이 중요하다.

곽주린 남부지방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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