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가정불화→가족해체…生 포기 등 사회병리로 이어져
"게을러서 가난하다고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칩니다."
4년 전 원치 않는 퇴직 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지난해 말 33㎡(10평) 남짓한 작은 주점을 개업한 이모(53)씨. 겨우 자리를 잡나 싶었는데 불경기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전 4시까지 밤잠 설쳐가며 영업해봤자 고작 다섯 테이블의 손님도 못 채우는 날이 많고, 가게 세를 내기도 빠듯한 달도 여러번이었다. 다시 길거리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이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며 "월급쟁이일 때는 잘 몰랐는데 몸으로 부딪쳐 본 세상은 너무나도 가혹했다"고 했다.
◆빚으로 사는 서민들=뼈 빠지게 일하고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급증하는 이유는 사회의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중간 계층이 될 만한 일자리는 1993년 50%에서 2006년에는 41%까지 감소했다. 4년제 대졸자의 20%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만큼 고용실태는 열악해지고 있다. 정규직과 별 다를 바 없는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이 받는 월급은 이들의 60% 선이다. 지난해만 해도 정규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201만원)의 63.5%(128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정규직 근로자(213만원)의 60.9%(129만원)로 떨어졌다.
'사장님' 소리를 듣는 자영업자들의 벌이도 별반 시원찮다. 월급쟁이에 비해 자영업자의 벌이가 훨씬 좋았던 것은 옛말이다. 요즘은 근로자 소득의 70% 수준밖에 못 미치는 벌이 탓에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통계청 가계수지동향을 보면 자영업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근로자 외 가구'의 1분기 월평균 소득은 278만원으로 도시근로자 가구(399만원)에 비해 120만원의 격차가 벌어졌다.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40)씨는 "하루 13, 14시간 일하지만 남는 것은 가족의 원망과 늘어나는 빚뿐"이라며 "물가는 치솟는데 서민들 삶은 점점 팍팍해져가니 상대적 박탈감만 커져 울분만 쌓인다"고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가난에 병드는 사회=오랜 가난의 굴레는 일할 의욕을 약화시키고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 '뼈 빠지게 일해도 남는 건 빚뿐'이라는 탄식이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생(生)에 대한 포기 등 사회 병리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까지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전국 2만가구의 만 15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조사에서 최근 1년 동안 한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인구의 7.2%로 나타났다. 자살충동의 원인으로는 경제적 어려움(36.2%)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특히 30대의 39.3%, 40대의 49.7%, 50대의 49.9%가 '경제적 어려움'을 가장 큰 자살충동의 원인으로 꼽았다.
가난은 단란한 가족관계마저도 황폐화시키고 있다. 살림살이에 쪼들리다 보니 가족 간 불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직장인 김모(48)씨는 "최근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상여금 지급이 중단되자 아내와 부쩍 싸우는 일이 늘어났다"며 "아내는 매일같이 '통장과 가계부를 다 맡으라'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고 그때마다 포장마차로 자리를 피한다"고 했다.
최모(52)씨는 '돈' 때문에 두달 전 아내와 결국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최씨는 "한때는 단란했던 가족이었는데 돈벌이가 줄어들자 다투는 일이 잦아졌고 급기야 손찌검까지 오가면서 아내가 이혼을 요구해왔다. 더 막다른 길로 가는 것보다는 이혼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대구지법 가정지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10월 말까지 접수된 전체 이혼사건은 8천50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천931건에 비해 7.3%(575건) 늘었다. 이 중 협의이혼은 5천890건에서 6천369건으로 1년 만에 8.1% 늘었다. 법원 관계자는 "요즘 협의이혼 속내를 들여다보면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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