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새해 달력

입력 2008-12-01 10:52:04

지난해 이맘때 일본의 어느 서점에서 달력을 하나 샀다. 미국 버몬트주의 산골에서 18세기풍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과 아름다운 정원 가꾸기로 유명한, 동화작가이자 삽화가인 타샤 튜더(지난 6월 작고)의 전원생활이 담긴 달력이다. 사진 속 풍경들은 날짜만 보는 단순한 달력이 아니라 메마른 일상에 쉼터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은근히 기다리곤 한다. "새해 달력이 나올 때가 됐는데…" 하면서. 은행 등 금융기관을 비롯해 공공기관, 대학, 크고 작은 회사나 자영업체 등이 광고 겸 감사의 뜻으로 달력을 만들어 무료로 나눠준다. 화가들이 자기 작품을 달력으로 제작해 선물하나 하면 건강 달력, 다이어트 달력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 달력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달력의 예쁜 그림이나 사진들은 한 해가 다 지난 후에도 그림 대신 벽에 걸려 눈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올해는 달력 인심이 예년 같지 않을 모양이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 여파로 기업체 등의 달력 제작 주문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매년 이맘때면 연말 특수로 24시간 가동도 모자라던 인쇄업체들이 올해는 일감이 없어 조용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새해 달력은 사람들을 경악하게(?)까지 만들고 있다. 신년 달력을 보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빨간 날'(공휴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연휴가 얼마나 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그런데 내년 달력은 이 같은 기대감을 여지없이 망가뜨리고 있다. 신정, 어린이날, 성탄절 외엔 모두가 토'일요일과 겹쳐져 있다. 3일 연휴가 보장된 설날과 추석도 주말과 겹쳐 있다. 주중 공휴일은 단 6일뿐이다. 주 5일제 기준으로 올해 연간 휴일 115일에 비해 내년은 110일로 5일이나 줄어든다.

己丑年(기축년) 달력을 받아든 사람들마다 절로 '으악!' 소리를 터뜨릴 만하다. 오죽하면 2009년을 '저주받은 해'라고까지 표현할까. 빨간 날을 기다리는 재미로 살아가는 많은 직장인들에게는 새해 달력이 어쩌면 스트레스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잖아도 세계적 불황이 언제 걷힐지 답답한 터에 '달력, 너마저도!' 격이다. 이번 연말엔 아무래도 새해 달력을 기다리는 즐거움을 거둬야 할 모양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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