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장·경북도지사 부인 동시 인터뷰

입력 2008-11-29 06:00:00

"밤낮없이 지역발전 애쓰는 우리 남편 힘내세요"

▲ 도지사 공관 앞 잔디마당에서 담소를 나누는 김춘희 여사(왼쪽)와 김원옥 여사는 마치 자매처럼 보인다.
▲ 도지사 공관 앞 잔디마당에서 담소를 나누는 김춘희 여사(왼쪽)와 김원옥 여사는 마치 자매처럼 보인다.
▲ 김원옥 여사
▲ 김원옥 여사
▲ 김춘희 여사
▲ 김춘희 여사

경북도지사 공관 1층은 현재 '대외협력교류관'으로 쓰이고 있다. 아담한 식당과 함께 다실이 갖춰진 공간으로 경북도청을 방문한 주요 방문객이나 외국 손님들을 모시는 곳이다. 2층은 도지사 부부의 개인 생활 공간이다. 1층 접견실에서 김범일 대구시장 부인 김원옥(59) 여사와 김관용 경북도지사 부인 김춘희(62) 여사를 만났다. 대구시장 공관이 아파트인 탓에 정원이 있는 도지사 공관을 택했다.

세 살 차이인 두 사람은 마치 언니, 동생처럼 친해보였다. 격이 없어보이면서도 예의를 차렸고, 상대가 말할 때 진중하게 들어주는 여유가 있었다. '여사'라는 호칭이 붙지만 이들도 아내이자 어머니, 그리고 여자다. 인터뷰가 부담스럽다는 말에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나 나눠보자는 것이라며 한발 뺐지만 정작 대화가 시작되자 결코 수다스럽지 않은 '사모님'들의 수다가 시작됐다. 2시간 20분의 대화가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성과 아내로서

-첫사랑의 추억은? (가볍게 시작한 질문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엉뚱하다 싶었던지 놀란 눈치였다.)

김춘희="기억도 거의 없는데…." (지사님이 첫사랑은 아니었냐고 질문했다.) "글쎄요, 호호호."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아련히 떠오르는 사람도 없냐고 다시 질문하자) "저는 달 밝은 날 생각나는데. 하하하."

김원옥="신문·잡지에 많이 나와서 알 텐데. 워낙 어릴 때 (시장님을) 만나서. 고1 때 영어서클에서 만났죠. 그게 첫 사랑이에요."

-지금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지금 남편과 다시 결혼하겠습니까?

김춘희="안 하지 싶어요. 모르고 했거든요. 나이가 돼서 집에서 가라니까 선보고 갔어요. 제 나이 서른, 지사님이 서른다섯. 시어머니가 일흔둘이셨어요. 지사님이 7대 종손인가 그래요. 시집가서 보니까 1년에 제사가 13번이더군요. 왜 미리 말 안 했냐고 따졌더니 '당신이 물어보기나 했소?'라고 하더군요. (시집살이가 힘들었겠다고 말하자) 특별히 힘들게 하신 건 아닌데, 제가 맞추느라 너무 힘들었죠. 어머님이 아흔에 돌아가셨는데 18년을 모셨죠. 마지막 7년은 치매로 고생하셨어요. 구미시장 오시기 1년 6개월 전에 돌아가셨죠. 어머님 모시면서 제가 인간이 됐죠. 어른을 모시는 법을 알게 된 거죠."

김원옥="반반이에요. 우린 한번 헤어졌어요. 하하. 대학 3학년 때 1년 정도. 왜 헤어졌는지 기억은 없는데, 아무튼 냉각기를 가지자며 헤어졌죠. 좋은 사람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적당한 사람도 없고 구관이 명관이다 싶어 다시 제가 찾아갔죠. 그때는 전화기도 없었고, 어디 있는지 알았으니까 제가 갔죠. 남편도 좋은 사람 찾으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 하더군요. 남편이 대학시절 행정고시에 최연소 합격해서 공직을 시작했고, 너무 반듯한 길을 걷다 보니. 저는 호기심도 많고 많은 걸 보고싶어하는데 그 부분이 채워지지 않더군요. 그게 조금 아쉽죠."

-살면서 가장 심하게 다퉜던 일은?

김원옥="제가 화낼 때도 있지만 시장님이 그러는 편이죠. 제가 잘 이해를 못하면 몇 시간이고 설명을 해요. 설명할 때는 알 듯하다가 다시 제 자신으로 돌아가서 그걸 못 고치면 화를 내요. 틀이 분명해서 거기에 맞지 않으면 트러블이 생겨요."

김춘희="지금 생각하니까 굉장히 많이 다퉜네요. 한번은 심하게 다투고 설움에 겨워서 친정 엄마에게 편지를 썼어요. 눈물 콧물을 흘리며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면서 썼죠.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방을 나왔는데, 옆 시어머니 방에 남편이 팔을 밴 채 누워 있더군요. 생전 어머니 방에서 눕는 일이 없었거든요. 마음이 찡했습니다. 둘이서 다투면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저 사람도 자신을 몰라주는 게 오죽 힘들면 어머니 곁을 찾아갈까 싶더군요. 그때부터 지사님을 이해하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어머니로서

-자녀들은?

김원옥="결혼 다 시켰어요. 딸이 서른셋인데 외손자가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아들은 서른살인데 손녀, 손자가 있어요. 둘 다 더 이상 자녀는 낳지 않겠다네요. 저희는 그래서 자식 결혼 다 시키고 손자까지 다 봤어요."

김춘희="둘 다 아들이고 큰아이는 서른하나, 둘째는 스물아홉."

-자녀의 배우자로 어떤 사람을 맞으면 좋겠는지?

김춘희="희망사항이지만, 가족도 알아보고 사람된 사람이면 좋겠어요. 특별히 많이 배우거나 많은 돈이 있거나가 아니라 그저 가족도 알아보고 사랑할 수 있는,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여성이면 좋겠어요. 경상도 말로 '사람된 여자'라고 하죠. 저는 경상도 여자를 보라고 합니다. 서울 여자들을 그런 걸 할 줄을 모른대요. 너무 자기 중심적이래요. 서울 여자여서 그런지, 요즘 여자여서 그런지."

김원옥="저도 서울에서 주욱 있었지만, 경상도 여자가 남편에게 잘하는 것은 잘 못 봤어요, 서울이나 전라도에 비해서. 하지만 경상도 여자는 시댁 식구에게 더 잘해요. 서울이나 전라도는 친정에는 잘하는데 시집은 안중에도 없어요. 며느리는 경상도가 괜찮은 것 같아요. (며느리가 경상도 출신이냐고 묻자) 아녜요. 청주 출신인데, 어른들이 경상도 출신이라서 이쪽 마인드가 있어요."

-자녀들을 매로 다스린 적이 있는지?

김춘희="제가 매를 댔습니다. 첫애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도 말을 안 듣고 반발을 해서 매를 한번 댔어요. 그러고 어느 날 아이 책상서랍을 보니까 낱말카드에 제 욕을 써놨더라고요. 하도 기가 막혀서 혼자서 많이 웃었어요. 화가 나는데 그걸 풀지 못하니까 거기에 써놓은 거죠. 이후에는 일절 공부 때문에 입을 대지 않았어요. 고3 때 반에서 54명 중 46등을 했더라고요. 그래도 공부하라는 말 안 했어요. 아이가 몸이 약해서 공부하다가 쉬는 바람에 28세에 대학 3학년이 됐는데, 어느날 전화가 왔어요. '엄마, 나 토익 만점 받았어!' 늦게 머리가 트인거죠.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됨'은 그냥 나이 먹는다고 배우는 게 아니었어요. 정말이지 아이를 때리면 안 됩니다. 아무리 사랑이 있다 해도 아이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저 상처로 남습니다."

김원옥="저는 크게 기억이 안 나는데. 남편이 한번 아이들을 나무라면 심하게 혼내는 편입니다. 저는 직장생활하느라 저녁에 들어오면 아이들을 자주 못 보니까 그저 안쓰럽고 애처롭죠. 다행이 딸아이도 사춘기도 없이 수월하게 자라준 편이네요."

◆사모님으로서

-업무와 관련해서 남편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는지?

김원옥="전혀 안 해요. (남편은) 제가 아예 시청 근처에도 못 오게 하세요. 시장님이 어디 출장가거나 상을 받아도 신문보고 알아요."

김춘희="거의 다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어디 다녀오시면 저녁에 둘이 앉아서 한참을 이야기해요. 서로 하루 일과를 일일이 말하죠. 보통 저녁 드시고 들어오는데, 집에 안 들어오고 (관사) 마당에서 불러내요. 그러면 정원 걸으면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집에 들어와요.

-남편이 단체장 되고 나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김춘희="워낙 어렵게 사셨던 분이니, 못 사는 사람 큰소리치고 구멍가게를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도시를 만들고 싶어했죠. (구미시장) 3선 했을 때였나? 어느 절에 갔더니 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 보살님이 와서 먹고살려고 구미에 간다고. 거기에 가면 살 만하다는. 며칠 뒤에 다른 보살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더라는군요. 굉장히 기뻤어요."

김원옥="시장님 고향이 대구인데, 공직을 마치고 고향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해요. 시장 월급이 산업은행 직원 평균임금밖에 안 된다고 신문에서 읽었어요. 그런데 밤이고 일요일이고 없이 일하잖아요. 매사를 꼼꼼히 챙기시는 편이에요. 포부를 펼치고 매사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보람 있죠."

-언론에서 남편에 대한 비판 기사를 접하거나 근거없는 소문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김춘희="사실이 왜곡돼서 소문 날 때 너무 속상하죠. 구미시장 막바지에 LG필립스LCD가 경기도 파주로 가는데 구미시장이 보냈다고 소문이 났어요. 사람들이 제게 물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제가 반문했죠. '만약 보냈다면 도대체 시장이 왜 보냈겠느냐?'고. 자기들도 답을 못하면서 그렇게 근거조차 소문을 퍼뜨려요."

김원옥="가끔 비판성 기사에 대해 사실이 맞냐고 (시장님께) 여쭤보면 하나만 알고 속사정을 몰라서 그렇게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세요. 그런데 사실 걱정이 돼서 제가 신문을 열심히 보고 기사 내용을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참 많아요. 대구시나 본인 관련 기사는 봐야 하는데."

-대구시와 경북도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김원옥="예전과 같은 명문고교가 없다 보니 똑똑한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서 인맥을 형성할 수가 없어요. 이러다 보면 대구가 고향이라는 생각도 희박해지고, 나중에 요직에 가 있어도 고향을 챙길 수가 없죠. 서울에는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등에서 서로 기숙하며 살다 보니 그네들끼리 형제처럼 지내면서 인맥을 형성해요. 나중에 가면 대구를 책임질 사람이 없어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김춘희="수도권 규제완화 문제를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는 32%만 비대화해도 난리를 쳤습니다. 우리는 50%가량이나 되는데 규제를 더 완화한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인재며 기업이 빠져나가는데 이 넓은 지역이 텅 비게 됩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지경입니다. 지사님도 수도권 규제완화와 관련해 큰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같은 한나라당인데 어떻게 야당과 똑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비판을 듣습니다. 참 나. 당론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거죠. 고민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자연인으로서

-주식에 투자한 남편이 1억원을 날려버렸다면?

김춘희="웃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냥 웃어버리지 뭐라고 하겠어요."

김원옥="제가 그 정도 될 것 같은데요. 은행에 넣어둔 돈이 지금 반토막 났거든요. 펀드인지 뭔지 저는 모르는데, 벌써 몇 년째 넣어둔 돈인데 어느날 알아보니까 반토막 났더라고요. 주식하고 연관되나 봐요. 시장님이 어느 날 '그 돈은 괜찮냐?'고 물어보기에 반토막 났다고 했더니 아무 말도 않으시던데요."

-현재 재산은 얼마쯤이며, 불편함없이 살기에 얼마가 적당하다고 보는지?

김원옥="공직자 재산신고할 때 19억원인가 신고했죠. 체면치레도 하고 궁핍하지 않게 살려면, 그리고 노후도 생각하려면 글쎄요, 많을수록 좋겠죠. 하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죠. 공무원 월급 받아서 돈 모을 수도 없고, 대박이 날 일도 없고. (지금 재산으로는 노후에 지장이 있다고 보냐고 묻자) 그럴 것 같아요. 시장님이 나중에 은퇴해도 나가는 돈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김춘희="30억원만 있으면 적당할 것 같아요. 지금은 재산이 12억원 정도인가? 30억원을 모을 가능성은 전혀 없지요. 그런데 그 정도 있으면, 아직 두 아들이 장가를 안 갔으니까, 전세라도 얻어주고 노친네 둘이 사는데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사진·정우용기자 vin@msnet.co.kr

김원옥 여사(김범일 대구시장 부인)

경북여고,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주한 캐나다 대사관 및 미국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뱅크에서 근무했으며, 대구광역시 새마을목련회 명예회장 및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회 명예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춘희 여사(김관용 경북지사 부인)

영주 출신으로 안동여고, 성균관대 심리학과 및 고려대 대학원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한 뒤 안동과학대학 간호과 교수 및 경운대 아동복지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현재 경상북도 새살림봉사회장, (재)경상북도새살림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 도지사 공관 1층 다실에서 김춘희 여사가 내준 차를 마시는 김원옥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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