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계에서 커미셔너(총재)는 어떤 존재이며 왜 필요한 것일까? 1919년 미국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의 내분과 함께 월드시리즈 승부 조작 사건이 터지며 야구계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이를 해결할 목적으로 외부 인사를 찾게 된 것이 커미셔너 제도의 시발점이다. 마을에 분쟁이 생기면 존경받는 원로가 나서 중재를 하듯 리그마다 각 구단의 이해관계로 갈등이 끊이지 않은 데다 구단에만 유리한 계약 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구단주를 설득, 해결하면서 동시에 팬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저명 인사의 영향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초대 커미셔너로 추대된 랜디스 판사는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영구 추방'이라는 초법적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팬들의 환영을 받았다. 야구가 외면 당할 위기를 넘기게 한 그는 이후 24년간 재임하면서 황제같은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모든 커미셔너가 랜디스처럼 추앙을 받고 권위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남부 상원의원 출신의 신사였으나 구단주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던 챈들러(2대)는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물러났고 야구계의 내막에 익숙해 선임된 야구기자 출신의 포드 프릭(3대)은 그나마 '구단주의 시중꾼'으로 소임을 다해 7년 임기를 연장 받았다. 공군 장성 출신이었던 에거트(4대)는 명목상의 수장으로 영입했으나 2년 후 행정 공백과 구단주들의 심각한 분열로 대중의 선호도가 떨어지자 총회에서 해임되고 말았다.
허약한 외부인이 도움이 안되자 다시 내부인으로 눈을 돌려 찾은 인물이 야구계의 고문 변호사 보이 쿤(5대). 파업 위기 등을 해결한 그는 임시 커미셔너란 시험 단계를 거쳐 14년간 재임했다. LA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조직의 명수' 피터 위버로스(6대)도 인기에 치중하다가 4년 후 예일대 문학교수 출신인 지아마티(7대)에 바톤을 넘겨야 했다. 그러나 1년 뒤 그가 사망하자 그의 친구였던 페이 빈센트(8대)가 뒤를 이었지만 이전 투구인 야구판에 염증을 느껴 물러나 버렸다.
야구계가 또다시 위기에 빠지자 사회적 변화에 따른 진정한 개혁을 원하게 되었고 이에 구원투수로 나선 이가 바로 현재의 커미셔너인 버드 셀릭(9대). 사업가 출신이면서 대를 이어 밀워키 브루어스의 구단주였던 셀릭은 선수 노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터리그를 신설해 엄청난 수입 증대를 이뤄냈고 엄격한 약물 규제와 함께 야구의 세계화로 1992년 이후 17년 간 재임하면서 존경을 받고 있다. 오늘날 셀릭이 받는 연봉이 1200만불(150억원) 이상이니 그가 갖는 위상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내년 초 새로운 총재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이끌게 될 것이다. 새 인물은 대행자라는 말 뜻대로 커미셔너의 임무인 야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동시에 수익성 향상과 제도의 합리적 개선 등 야구계의 발전을 추구하고 야구의 품위와 대중의 사랑을 지켜내야 한다. 기반이 취약하고 숙제가 산적한 한국 프로야구의 장래를 생각하면 정치인의 배경에 안주하려는 한심한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최종문 야구 해설가
※ 이번 회를 끝으로 '최종문의 펀펀야구'를 마칩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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