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중 만나는 가장 당황스러운 경우는 내가 전문가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이다. 예전에는 연세드신 분이 편견과 선입견으로 의사의 처방을 거부하고 스스로 처방을 내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내 병은 내가 잘 알어! 저번에 먹었던 흰 알약 2개와 노란 알약 2개 3일분하고, 연고 1통 줘." "어르신! 그 때는 접촉성 피부염이구요, 이번에는 곰팡이균 때문에 백선이 생겼어요. 그 약 드시면 안돼요! 할머니 병세에 맞게 다시 처방해드릴께요." "아니야 그 약이 제일 잘 들어! 저번 약 먹고 신기하게 나았다구! 그대로 줘!"
이렇게 막무가내로 우기는 경우는 차라리 귀여운 앙탈이다.
요즘의 네티즌세대 젊은이들은 상담할 때 "네이버 닷 컴에서 찾아보니…."라며 진료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로 나의 실력을 테스트하고 지식 검색으로 내린 처방을 나에게 통보한 다음 시술비를 협상하는 진풍경이 왕왕 벌어진다.
이런 웃지못할 상황은 정보를 얻는 방법이 다양화하고 전문 지식조차도 수월하게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된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순기능도 있을 수 있지만 의료라는 특수 분야에서는 역기능도 만만찮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과거에는 전문지식이라는 철통같은 방어벽 덕분으로 의사들이 혹은 병원들이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권위를 지킬 수 있었고, 나아가서 오만과 교만을 부리면서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막연한 피해의식까지 안겨주게 된 것 같다.
근래들어 전문지식의 폐쇄성이 무너지면서 일반인은 전문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시술하고 장비를 다루는 기능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의료는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상거래와는 달라 의사와 환자간 협약이나 논의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닌 이상 전문지식에 의한 처방만큼은 전문인의 일방통행이 인정돼야 한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대 교수 카너먼은 인간의 판단 및 의사 결정의 과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놀랍게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지름길 방식이나 주먹구구식 규칙에 의존, 결정하며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 인물관련 이야기로 어림짐작해 가장 그럴듯한 것을 선택한다고 했다.
따라서 특정분야의 판단에서는 전문가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논문 보고에 따르면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5만 단위(chunks)의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고 정보에 대한 지식구조를 이 정도로 세우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는 것.
이렇게 많은 시간과 경험을 투자해 쌓은 전문지식의 깊이가 단시간 검색으로 얻은 정보와 질적으로 차이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진료할 때마다 전문가로서의 독선이나 기득권이 아닌 절실한 안타까움으로 환자에게 조심스레 쓰는 애교어린 멘트가 있다. "제가 의사거든요…." 053)253-0707, www.gounmi.net
(고운미피부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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