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일심동체이어야 할까"
무지(중국 동북부 지방의 가상 도시)시의 육군병원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는 쿵린은 부모의 뜻에 따라 고향 처녀 수위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는 딸 하나가 있다. 결혼 후에도 쿵린은 무지시에서 근무했고 수위는 고향에서 쿵린의 부모를 봉양했다.
수위는 좋은 여자였지만 쿵린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했던 일은 월급의 일부를 떼서 부치는 정도였다. 쿵린은 매년 휴가 때 고향집엘 다녀왔다. 그가 휴가 때마다 고향에 간 것은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서였다. 아내를 설득해 인민법원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이혼에 동의하느냐?'는 재판관의 마지막 질문에 아내는 '아니다'라고 답하곤 했다. 그런 생활이 매년 반복됐다.
쿵린은 병원에서 처녀 간호사 '만나'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쿵린이 유부남이었기에 두 사람은 결혼할 수 없었다. 쿵린과 만나는 안타까운 연애를 18년이나 지속했다. 18년 동안 부부가 동침하지 않으면 한쪽이 반대해도 이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8년이 지나고 쿵린은 아내와 이혼했다. 그리고 '만나'와 결혼했다. (이 소설은 결혼과 인생에 관한 질문이므로, 이 코너에서 언급하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 주제는 아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쿵린은 군의관이었고 젊은 여성으로 구성된 간호병들을 교육했다. 아내 만나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남편이 여자들을 가르치는 것도 싫고 수업시간에 웃는 것도 싫다. 간호병 중에 목덜미가 거위 목인 양 길고 흰, 여우같은 년이 있는 것도 싫다. 남편이 수업준비를 위해 집 밖에서 공부하는 것도 싫다.'
(참고로 말하지만) 남편 쿵린은 곁눈질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어놓은 선 위로만 걷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내 만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만나는 남편 쿵린에게 따졌다.
'그런 걸(강의) 하면서 왜 나하고는 상의 안 했어요?'
'그런 것까지 상의해야 돼?'
'맙소사. 이 사람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몰라요.'
'내가 뭘 잘못했는데? 간호병들이 도와달라고 하는데도 도와주면 안 된다는 거야?'
'뭘 잘못했는지 말해주죠. 집에서 임신한 아내가 혼자 우울하게 끙끙 앓고 있는데, 당신은 여자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낸다는 게 말이 돼요?'
'내가 무슨 여자하고 좋은 시간을 보낸다고 그래?'
'간호병들은 여자 아니에요? 쉐어(목덜미가 희고 긴 여자)는? 말씀 해보시지?'
만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는 혼자 결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흔히 듣는 이 말 '부부 일심동체'.
부부 일심동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한마음으로 굳게 화합하라는 의미와 이 소설에서 만나가 보여주는 것처럼 '오장육부'까지 모조리 알고 나눠야 한다는 의미.
이 말만큼 무지막지한 말도 드물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고, 두 마음이 한 마음이 돼야 한다고 어쩌면 이렇게 뻔뻔스럽게 요구하는 것일까. '부부가 어째서 일심동체냐, 이심이체지'라고 말하면 '문제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기 십상이다.
회사의 옆자리 동료와는 일 년에 한 번도 안 다투는 사람이 배우자와는 자주 다투는 것을 흔히 본다. 옆자리 동료에게는 지키는 예의를 배우자에게는 안 지키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대부분 부부가 일심동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부부싸움이 대부분 사소한 일에서 기인한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부부가 일심동체'라고 믿기에 온갖 간섭을 하고, 온갖 이해를 원한다. '서방한테 그 정도 말도 못해? 마누라가 그 정도도 못해 줘? 서방이니까 마누라니까 알아야겠어!'라는 말은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다. 서방이, 마누라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기에 모조리 이해하고 받아줘야 하는가?
사람은 부부가 되기 전에 각자 살아온 날들이 있고,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부부는 남이고 남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다워지고 평화로워진다. 부부싸움을 보라.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싸움인가.
'일심동체' 사건 후 만나가 아파 누워 있고 쿵린이 밥을 했다. 쿵린이 깜빡 잊는 바람에 밥이 타버렸다. 만나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이런 밥을 먹어. 돼지도 입을 안 대겠다.'
회사의 옆자리 동료가 밥을 태웠어도 그렇게 말했을까?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은 그래서 폭력에 가깝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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