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유혹에 못떨쳐…도박 빠지는 사람들

입력 2008-11-25 09:33:02

인기 방송인 강병규씨가 온라인 도박으로 13억원을 잃은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서민 생활 깊숙이 뿌리내린 온라인 도박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생중계'를 빙자한 온라인 도박은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면 집과 사무실 어디서든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독성이 더욱 높다. 온라인에서 '로또방' '트럼프방' 등 신종 도박이 활개치고 있는 가운데 포커, 고스톱 등 오프라인 도박으로 인생 파탄을 맞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활개 치는 온라인 도박=건설일용자인 40대의 김모씨는 두달째 집을 나와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고 인터넷에서 재미 삼아 시작한 바카라 도박. 그러나 이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호기심에 1만, 2만원씩 게임을 한 게 화근이 됐다. 판돈은 금세 수십만원으로 불었고 번 돈은 모두 게임에 쏟아부었다. 결국 가족과 싸우고 집까지 나온 그는 잃은 돈을 만회해야한다는 생각에 도박을 끊지 못했다. 거짓말로 둘러대며 빌린 돈 2천만원도 모두 탕진해버린 그는 현재 PC방을 전전하고 있다.

강병규씨를 도박의 늪으로 끌어들인 인터넷 도박은 필리핀 등 해외에 도박장을 개설해놓은 신종 온라인 도박이다. 바카라 등 카지노 도박장면을 생중계로 비춰주면서 속임수를 의심하는 네티즌들을 안심시키는 이런 수법은 최근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이메일 등을 통해 무차별로 살포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게임 조작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시계를 설치하거나 TV뉴스를 틀어놓았다"며 "승률이 최대 수십배에 달한다"며 유혹하고 있다.

TV의 로또 추첨을 모방한 일명 '로또방'도 등장했다. 생중계 화면에는 로또 추첨 때처럼 여성 도우미가 숫자를 불러준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베팅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그 자리에서 배당금이 주어진다. '청·홍게임' 'ABC게임' '식스게임' 등 각종 게임에 한차례 1만원에서 200만원까지 걸 수 있다. 일명 '도리짓고땡'이라 불리는 로또형 생중계 도박이다.

40대 김모씨는 "온라인 도박은 한 게임에 길어야 3~5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짜릿함이 크고 중독성도 강하다"며 "얼마 전에는 2천만원을 잃고 가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도박 사이트의 유동IP(Internet Protocol)를 통해 가정이나 PC방 등의 컴퓨터에서 도박하는 수법도 등장했다. 한 업주는 "고객이 전화를 걸어오면 '메신저'로 프로그램을 보내주고, 돈은 요구액만큼 충전해준다"고 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어=50대 중반의 전직교사 최모씨는 도박 때문에 직장을 잃고 노후까지 망쳐버렸다. 바둑을 즐겼던 그는 1만, 2만원을 놓고 내기바둑을 두는 게 소일이었다. 그러다 바둑 실력이 늘자 기원을 찾았고, 그곳에서 도박 마수(魔手)에 걸려들었다. 한 판에 100만원짜리 바둑을 두게 됐고 도박의 짜릿함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엔 연금까지 빼내 도박을 했고, 소문이 퍼지면서 30년 직장을 제 발로 나와야 했다.

경찰의 집중 단속에도 도박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수법도 다양해지면서 단속은 더욱 애를 먹고 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 말까지 붙잡힌 도박사범은 1천693명. 이 중 '트럼프방' 등 신종도박장을 개설, 운영한 혐의로 100여명이 검거됐다. 새미래 심리건강연구소 권정옥 부원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과 생활비, 자녀 교육 등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서 한탕의 유혹에 더욱 쉽게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도박중독을 끊기 위한 모임인 대구단도박회에는 현재 120~130명이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다. 요즘도 월 4, 5명이 신규 상담 신청을 할 정도다. 회원 대부분이 인터넷도박, 고스톱, 포커 등 도박으로 돈을 잃었다. 또 주식 중독에 빠져 상담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구단도박회 관계자는 "공무원, 택시기사, 소규모자영업자, 직장인, 주부 등 도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직업과 신분을 가리지 않는다"며 "도박은 심각한 병으로 치유를 해야하지만, 대부분이 '안 하면 그만'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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