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10년을 준비하자.

입력 2008-11-25 06:00:00

지난 10월 25일 일본의 교토에서 일본인들과 재일코리안들이 모여 '한국병합 100년 시민네트워크'를 설립했다. 1910년에 대일본제국이 대한제국에게 이른바 '한국병합조약'을 강요하여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본격화한 지 100년이 되는 2010년을 2년 앞두고, "일본이 저지른 식민지 지배의 죄책을 사죄하고 그 역사적 책임을 감당하여 일본과 한반도의 화해를 진척"시키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또 일본의 학자들도 이미 2년여 전부터 1910년 조약을 포함한 1900년대 초 한일 간 조약들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연구회를 발족시켜 활동해 오고 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관보인 1910년 8월 29일자 관보 호외에 실려 있는 1910년 조약은,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이라는 조문으로 시작되고 있다. 19세기 말 이래 집요하게 기도된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이로써 '법적'으로도 완성된 것으로 처리되었다.

하지만, 1904년의 의정서, 1905년의 한일협상조약(을사늑약), 1907년의 한일협약(정미늑약) 그리고 1910년의 조약(합병늑약)으로 이어진 1900년대 초 한일 간 조약들의 효력은 이후 줄곧 논란이 되어 왔다. 1910년 조약만 하더라도, 융희 황제가 1926년 4월 26일 숨지기 직전에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던 궁내대신에게 구술하여 남긴 유조(遺詔)에서, "지난날의 병합 인준은 강린(强隣)이 역신의 무리와 더불어 제멋대로 해서 제멋대로 선포한 것"이라고 밝혀, 그 효력을 부인했었다.

한일 간에 그 조약들의 효력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서 이미 한 번 다루었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의 입장 차이 때문에, 결국 한국어 조약문에서는 '이미 무효', 일본어 조약문에서는 '이제는 무효'라고 각각 규정하는 것으로 애매하게 처리되었다. 이후 한국 정부는 그 조약들이 '애당초' 무효였다고 주장해 오고 있고, 일본 정부는 '원래는 유효했지만 1948년 8월 15일 한국 정부가 수립된 때에 무효가 되었다'고 주장해 오고 있다. 그래서 35년간 이어진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한국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불법 강점'이 되고 일본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합법 지배'가 된다.

이러한 한일 간의 차이가 '일제 강점 100년'을 2년 앞둔 21세기의 한일관계를 여전히 짓누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환절기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드는 계절병처럼, 한일 역사교과서 '전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교과서는 다름 아니라 '한국병합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교과서 '전쟁'은 이제 한일 간에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이른바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은 '전장'을 국내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매우 유감스럽게도, '좌파교과서'라는 천박한 구호 아래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고쳐 쓰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전황'은 보다 심각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당장 오늘이 각박하고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고 보면, 2년 뒤를 준비하자거나 100년 전을 생각하자는 제안은 허허롭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를 빼앗겼던 그날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지금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기 위해 필요하다. 응답자의 4분의 1가량이 이민을 떠나거나 한국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원하며 나라가 침략을 당해도 싸우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상황에서,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경제적 지표들을 보면 식민지가 된 것이 더 나았다'는 경제유일주의의 맹목적인 주장을 '역사학자'라는 사람들이 강변하고 있기에, 그리고 그것을 정부가 나서서 강요하고 있기에 더더구나 필요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현재와 미래의 난관을 헤쳐 나아가기 위한 지혜를 찾아내는 '시민'들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김창록 경북대 법대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