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시상통(視床痛)

입력 2008-11-22 06:00:00

할머니가 외래에서 하소연하신다. 이상한 감각과 쩌릿쩌릿하고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오른쪽 반에 와서 고통스럽다고 울먹였다. 내가 준 약은 통증을 약간 가라앉히기는 하지만 약의 효력이 떨어지면 또 재발해서 견디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10여년 전 파열된 뇌동맥류 수술을 받았던 할머니로 정상인처럼 생활하다가 두 달 전에 새로 오른쪽 반이 마비되고 감각이 이상해지면서 말이 잘 되지 않아 다시 입원했다. MRI 사진에서는 좌측 시상부에 크지 않은 뇌경색 소견이 관찰되었다.

약물 치료 후 운동과 언어 장애는 거의 회복되었으나 앞에서 언급한 작열통이 시도 때도 없이 할머니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감각성 작열통을 시상통 증후군 혹은 디제린-로시 증후군(Syndrome of Dejerine-Roussy)이라고 부른다. 시상은 뇌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며 몸에서 오는 모든 감각을 받아들이는 감각중추다.

이와 비슷한 증상으로 환상통(幻想痛)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지나 몸의 일부가 절단되었거나 제거되었을 경우 절단된 사지나 제거된 신체 부위가 있는 것처럼 느끼고 그 부위에서 참기 힘든 작열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제거된 신체부위의 감각을 담당하고 있던 척수의 배각신경원(背角神經元)이 감각이 들어오지 않자 과민반응을 일으켜 그 부위의 감각신호를 시도 때도 없이 시상으로 보내기 때문에 발생한다.

늦가을이다. 나무들은 거의 모든 나뭇잎들을 떨어내고 몇 개만 붙들고 있다. 한 번씩 불어오는 찬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부르르 떨기도 한다. 그러한 떨림은 어쩌면 나뭇잎을 잃어버린 환상통으로 괴로워하는 나무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자식을 떠나보내고, 사랑하는 연인을 보내버리고, 주식시장에서 재산을 날려버리고, 그리고 직장을 잃어버린 뒤 환상통속에서 몸부림치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울러 시상에 깊게 흔적으로 만들어진 자식이나 연인에 대한 애틋한 추억이, 혹은 주식이나 직장의 아름다웠던 옛 기억이, 이러한 깊은 가을날에는 시상통처럼 우리들을 아프게 괴롭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우리들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고통을 느껴야 고통으로 고생하는 타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이 아는 것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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