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대화] 소설가 조영아

입력 2008-11-22 06:00:00

소설가 조영아씨가 장편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를 출간했다. 이 시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아버지'에 관한 작품들이 사랑과 정 혹은 책임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조영아의 작품은 '관계'에 관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아버지'가 슬프지만 아름다웠다면 조영아의 '아버지'는 감정이 배제돼 있지만 암울하다.

작가는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아버지들에 대해, 점점 작아지는 아버지의 자리, 점점 무거워지는 아버지의 어깨에 대해 짚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새로운 작품세계로 넘어가기 전에 아버지에 대해 꼭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독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강요하거나 '아버지란 사람들이 어떻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조영아는 핏기 없는 얼굴, 기운 없어 보이는 어깨, 말 없는 입을 가진 사람이다. 왁자지껄한 술자리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이 통 없다. 스스로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쉬이 어울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이 많다"고 말한다. 속에 꾹꾹 눌러둔 말들,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말들은 글을 통해 나타난다. 그래서 작가 조영아에게 소설쓰기는 일종의 소통방식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소설을 통해 타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조영아의 장편소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작가가 여성임에도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과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전작인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의 주인공은 성장중인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눈과 마음을 이끄는 존재는 여우였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우는 실체가 아니라 환상이다) 이번에 출간한 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에는 자기존재 증명에 실패한, 혹은 실패할 것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아버지고 남편이고 멀쩡한 사회인이었지만 '관계 맺기'에 실패한 고립된 인물이다.

야생의 밀림이 아니라 아파트 베란다에서 애완동물로 살아가는 '이구아나'는 모든 관계로부터 격리된 한 중년 사내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 격리된 사내는 애완동물이 욕망을 거세당하고 '애완'으로만 기능하듯, 태평양을 건너간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송금하는 '기능'만 담당한다. 그와 가족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통장의 잔고'일 뿐이다. 이제 그 통장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가족들이 떠나고 텅 빈 집은 날이 갈수록 자란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집은 아침에 나갈 때보다 훨씬 커져 있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집은 더욱 자라나 있다. 거대한 집은 왜소한 아버지를 보여주는 보색대비에 해당한다. 자신의 몸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집은 더 이상 친숙한 곳도 안락한 곳도 아니다. 이 공간은 두려운 곳이며 가족의 해체를 증명하는 공간, 결국에는 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공간이다.

소설 속 또 다른 인물인 정 과장의 자살은 무섭게 다가온다. 그는 단순히 운영하던 치킨 집이 파산해서 자살을 선택한 게 아니다. 소설은 '돈'이 없어도 인간이 죽지만, '존재의미 찾기'에 실패해도 죽는다고 말한다. 살아 있어도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사람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살아있지만 '죽은 자들'이다.

조영아는 소설 속 인물로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다고 했다. 왠지 더 쓰고 싶은 존재라고 했다. 아버지를 주제로 소설을 썼지만 작가 자신의 가족사와는 별 관계도 닮은 점도 없다고 했다. 조영아의 아버지는 무척 자상하고 가정적인 분이었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잘 해주는 사람이었다.

조영아는 소설가이자 아내고 엄마인 사람이다. 다른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새벽에 일어나 밥하고, 아이들과 남편을 학교와 직장에 보낸 후에는 청소하고 빨래하고 장보고 김치 담그는 일을 한다. 소설은 집안 일이 대충 끝나는 오전 11시쯤부터 가족들이 돌아오는 오후 6시까지 쓴다. 가족들 저녁 챙겨 먹이고 밤에 또 1,2시간쯤 쓴다. 물론 불이 붙으면 시도 때도 없이, 잠도 자지 않고 소설을 쓰기도 한다. 지난해까지는 매일 고시원으로 출근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조영아는 일부러 찾는다고 소설 소재가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머리에 쌓이는 것들, 찾기보다는 우연하게 눈에 띄는 것들, 소설적 측면이 아니라 삶의 측면에서 고민하던 것들이 글이 돼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소설가 조영아씨는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사람이다. 그녀는 "신춘문예!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요. 한마디로 징그러워요. 내가 거기를 통과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예요. 문학청년들, 신춘문예 지망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 하라는 말씀만 드릴게요"라고 했다. 그녀는 신춘문예는 한마디로 '행이고 불행이고, 복(福)이고 박복(薄福)'이라고 했다.

조영아는 소설가에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인내를 꼽았다. 무엇이든 참고 또 참고 견뎌야 한다고 했다. 재미없는 책도 끝까지 읽어야 하고, 머리 아픈 구상을 해야하고, 좀처럼 진도 나가지 않는 작업을 해야 하고, 복잡하고 성가신 출간 작업에도 참가해야 한다. 그리고 책이 나온 후에는 무심한 독자들이 쏟아내는 욕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했다.

조영아는 '부지런히 걷고 볼 일이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고 다짐이라도 하는 듯하다. 그녀가 스스로 채근하는 것은 '출발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조영아는 두 아이를 낳고 서른 넷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서른 아홉에 등단했다. 늦은 게 아니라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출발일 것이다. (그럼에도 20대 초반에 등단하는 작가들이 많은 상황을 염두에 두는 듯 했다.)

"늦게 출발했으니 70살이 될 때까지 쓰고 싶어요. 그때쯤이면 딸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죠. 손자와 손녀들이 자라서 사랑을 알 때까지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조영아는=강원도 정선 출생. 서울여대 국문과 졸업. 2005년 단편소설 '마네킹 24호'로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2006년 장편소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로 제 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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